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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하는 공산국 민주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경 학생시위에 대한 군대의 무자비한 진압과 모스크바의 새로운 의회 탄생 진통은 공산국가 국민들의 불만처리 방안에 대한 지도자들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볼셰비키혁명 후 70년이 지난 현재 공산 세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공산주의 이념은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퇴락의 길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정권들은 쉽사리 전제주의 정치체제를 큰 혼란 없이 허물어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폴란드의 파업사태, 소련의 민족주의세력 소요, 중국의 대규모 민주주의 시위 등 정치적·사회적 동요가 최근 여러 공산국가에서 전개돼 왔다.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해 문호를 개방해야 하는 공산국가 지도자들은 내부 비판 세력의 폭발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중국지도부는 사회동요에 대해 반혁명이라는 낙인을 찍고 탱크를 불러들이는 해결 방안을 택했다. 81년 12월13일 폴란드의 「야루겔스키」가 취했던 것과 동일한 길이다. 그는 당시 자유노조 운동에 대해 계엄령을 선포했었다.
그러나 이제 폴란드는 1945년 공산화이래 가장 자유로운 총선거를 실시하기에 이르러 북경사태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폴란드·헝가리·소련이 민주주의를 향해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이들도 역시 위험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한번 자유의 맛을 본 국민은 더 많은 요구를 내세우는 버릇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경의 대학살 사태는 공산세계의 자유화 추세 앞에 놓인 불확실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인민」의 이름으로 통치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반혁명」폭동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쉽게 민주화를 뒤집을 수 있다.
크렘린은 대중의 동요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정반대인 두 가지 방법을 놓고 망설이는 느낌이다. 소련이 그루지야 공화국의 시위 사태에 군대를 투입, 20명의 사망자를 낸 것은 천안문사태와 유사점을 갖는다. 소련은 1921년 크론슈타트에서 1만명의 선원들이 정치적 억압 등을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을 때 5만명의 군대를 투입한 바도 있다.「고르바초프」와「야루젤스키」는 통제된 개혁을 추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폭동과 탄압이 되풀이되는 역사를 단절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지도자들은 학생들의 동요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신중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시위 초반단계에 몇 차례 나타났던 지도부의 양보 자세는 위기를 무산 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이념을 이유로, 부분적으로는「덩 샤오평」(등소평)의 고집 때문에 이 같은 해결방안이 제외됐다.
등소평과 「리펑」(이붕)은 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중국을 억압과 폭동의 악순환으로 몰아 넣었다. 두 사람 모두 인기가 너무 떨어져 군대와 탄압에 의해서만 통치가 가능해진 것 같다.
천안문 사태를 가져온 중국사람들의 불만은 적절한 기회가 발생하면 더욱 큰 힘으로 폭발할 것 같다. 그러한 기회의 하나는 등소평의 사망이다. 84세인 그의 건강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모스크바=마이클·돕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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