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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보증, 휴지로 만들려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의 개업의사 1만1천여명이 의보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겠다는 결의를 했다. 7월1일부터 실시될 국민의료 개보험 체제를 눈앞에 두고 의료시술의 담당자인 의사들이 전면 거부를 들고나오니 의료보험증 이란 게 아무 쓸모 없는 휴지가 돼버릴 위기에 처해있다.
전국민 개보제라는 정부의 복지정책은 정부의 아무런 지원도 없이 무작정 병원과 의사들의 회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게 의사들의 집단 항변이다. 의보 실시에 따른 병원 경영의 어려움은 정부 지원으로 든, 진료비 인상으로든 메워져야 한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지금껏 평균 20%의 일반환자 진료비로 병원의 적자체제를 간신히 면해오고 있던 터에 그나마 7월부터 1백% 의보 환자를 받게될 경우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고, 적정수준의 의료시술 행위를 펼 수 없기 때문에 「의보 지정서」를 아예 반납하겠다고 결의해 버린 것이다.
이들 의사집단의 항변과 주장 속에서 병원 경영의 어려움과 개업의들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1주일전 서울지역 의사들이 한나절 집단 휴진 이라는 진료거부 행위를 연출했고 여기에 이어 지정서 반납 결의라는 두 번째 집단 행동을 결의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1만여 의사들로부터 커다란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라든가, 인술이라는「낡은」의미의 의사 상을 떠나서라도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책임져야할 사회의 공적 기능 담당자다. 병원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자와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라는 2개의 뗄 수 없는 역할을 맡고 있는 개업의들이 어느 한쪽의 기능, 예컨대 병원 경영자의 기능만을 강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받게된다.
어떤 자료, 어떤 조사에서든 개업의의 소득수준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의사 집단이 앞으로 생겨날 경제적 불이익을 예상해 시민의 건강권과 진료권을 무시하는 실제적 거부행위를 전개할 때, 그것은「가진 자들」의 더 갖고싶은 욕망이라는 사회적 불만으로 파급될 수 있다.
의료수가의 조정이라는 매우 단순한 문제를 이러한 사회적 모순, 사회적 불만으로까지 확대시키지 않고 기능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선 우선 의사집단이 스스로 자제의 미덕을 발휘해야한다. 의사의 경영측면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진료비로는 고질의 의료시술을 책임질 수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한다.
30%인상과 7%인상이라는 서로 타협점이 없는 인상안을 제시해 놓고 의사들은 「집단 휴진」, 보사 당국은「병원 내사」라는 흉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해 집단이익을 지키려 할 때 그 집단에 대한 신뢰는 쌓여질 수 없다.
아직도 우리사회예서 의사라는 지위는 경제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신분 면에서 높은 신뢰와 덕망을 차지하고 있다. 의사집단의 양식과 분별력이 새삼 강조되어야 할 때다.
보사당국 또한 자체 인상안으로 제시한 14.5%인상안을 두고 국민경제와 국민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차원에서 절충과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2, 3년 여유를 두고 연차별 인상을 통해 적정 인상목표에 달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만하다.
의료계와 보사당국의 현명한 판단력과 양식 있는 행동이 절실히 필요함을 거듭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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