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球都 자존심 뭉개진 사직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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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삼성)의 홈런 공을 잡겠다는 뜨거운 열기 만큼은 프로야구의 인기를 되살리는 '보약'이 될 수 있다.그러나 경기내용이 마음에 안든다고 행패를 부리는 것은 야구를 죽이는 '독약'과 같다.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삼성 경기를 1시간34분간 중단시킨 일부 관중의 행태는 분명 지나쳤다.

롯데가 2-4로 뒤지던 8회초 삼성 공격.선두 박한이가 안타로 출루한 뒤 박정환이 희생번트를 성공시켜 1사2루가 됐고,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롯데 투수 가득염은 홈 플레이트를 벗어나 서 있는 포수 최기문에게 연속 네개의 볼을 던졌다.

이 때부터 외야 관중석에서 플라스틱 물병 등 각종 오물이 구장 내로 날아들고 일부 팬이 뛰어들기도 했다.오후 7시30분 중단됐던 경기는 롯데 김용철 감독대행이 마운드에 올라가 해명을 한 뒤 오후 9시4분이 돼서야 다시 시작됐다.

일부 관중은 왜 이처럼 화를 냈을까. 홈팀 롯데가 '정정당당한' 승부을 외면한 데 대한 자존심 강한 부산 팬들의 분노였을까.대기록 수립을 목격한다는 기대감이 수포로 돌아간 데 대한 짜증이었을까. 아니면, 이승엽의 홈런 공을 잡아 '대박'을 노릴 기회가 무산된 데 대한 화풀이였을까.

생각은 자유다.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그러나 행동은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 1시간 반이 넘도록 야구장을 '무법천지'로 만든 것은 분명 잘못됐다.

다시 그 순간을 곱씹어 보자.논란의 핵심은 '고의사구를 낸 것이 과연 잘못인가'다. 당시는 "경기 흐름상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구경백 경인방송 해설위원의 말처럼 고의 사구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롯데 투수는 앞선 세타석에서는 이승엽과 정면 승부를 했다. 이번엔 거른 뒤 1사1,2루에서 병살을 노리겠다는 심산이었다. 고의 사구도 분명 야구의 전술 가운데 하나다.

이승엽의 56호 홈런의 최대 걸림돌은 어쩌면 고의 사구가 아니라 일부 관중의 도를 지나친 관심과 극성인지도 모른다. 욕설이 난무하고 쓰레기가 날아드는 상황이라면 이승엽의 어깨는 더욱 경직될 수 밖에 없다.

부산=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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