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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내 통신도 혹시?…확산되는 ‘빅 브라더의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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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불법 사이트 차단에 대한 반대가 들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어제까지 약 23만 명이 동의했다. 반대 이유는 ‘성인의 권리’ 같은 것이 아니다. 데이터 일부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차단 방식이 감청으로 변질할까 봐서다. 청원의 골자는 이렇다.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다.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 덕에 정부 정책에 자유롭게 비판이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새 차단 방법을 사용하면 정부에 따라서 입맛에 맞지 않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을 감시하거나 감청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를 근거 없는 걱정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통신사들이 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가 지난해 상반기에만 350만 건에 이른다. 통신자료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화·문자를 주고받은 시간 등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인해 150만 명이 텔레그램으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이 이뤄졌다. 정치인·법조인과 고위공무원들은 휴대전화 통화 대신 요즘 보이스톡을 쓴다고 한다. 보이스톡은 녹음 기능이 없고, 데이터 통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서버에 오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끝 모를 적폐 청산 시대가 빚어낸 풍경이다. “정보 유출자를 찾아내겠다”며 고위 공무원 휴대전화를 가져가는 등 툭 하면 휴대전화부터 들여다본 게 이 정부다.

결과는 빅 브라더의 공포다. ‘누군가 나를 감시한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다. 적폐와 거리가 있는 일반 국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불법 사이트 차단 청원이 올라오고 1주일도 안 돼 20만 명 이상이 동의한 것도 그래서다. ‘정부가 언제든 내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대부분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통신기록 조회 등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신뢰 쌓기가 꼭 필요하다. 빅 브라더의 망령이 마냥 어슬렁거리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