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빅데이터 갈라파고스’된 한국, 공론화로 출구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2019.02.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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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빅데이터가 ‘산업의 쌀’이란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빅데이터가 없으면 기업들은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는 시대가 되면서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첨단 정보기술 업체들도 빅데이터가 자기 비즈니스의 기반이 된 지 오래됐다. 전통 제조업을 밀어내고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권을 장악한 ‘팡 4형제’(FANG,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가 21세기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원동력도 빅데이터 기술이다. 이들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제품이 잘 팔리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고객에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빅데이터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의 쌀’ 빅데이터 규제 대상 전락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관행은 없애고
개인식별 없는 정보는 적극 활용해야

어디 미국뿐인가. 제조업에서 선진국을 모방하기에 급급하던 중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은 물론 서방 선진국을 위협하게 된 배경 역시 빅데이터 활용을 극대화한 덕분 아닌가. 시가총액 기준으로 삼성전자보다 기업 가치가 높아진 알리바바·텐센트가 창업한 지 20년 안팎 만에 세계적 기술기업이 된 것 역시 빅데이터를 활용한 제품 개발과 마케팅, 고객 맞춤형 서비스 덕분이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빅데이터 갈라파고스’로 전락한 처지다. 과도한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가로막혀 세계의 흐름과 역주행한 결과다. 이는 한국 산업 발전에 심각한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다. 빅데이터를 원활하게 쓰지 못해 국내 기업들이 모바일 상거래는 물론이고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스마트공장·첨단이동통신(5G) 등 초고속 플랫폼 경제 시대 자체를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다. 나아가 농업·의료·복지 분야에서도 정부와 기업이 ‘정보 깜깜이’가 되면서 효율적인 대처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 없이 4차 산업혁명은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공론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가 문제라면 원인을 해소하면 된다. 그 원인은 대략 두 가지로 꼽힌다. 우선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한국적 관행이다. FANG은 물론 중국 업체들도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금세 회원 가입이 되지만 한국에선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해 신상털기에 가까운 정보를 수집한다. 또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기업들의 고의·부주의로 대량 유출된 사고도 문제였다. 한국에선 프라이버시가 당사자도 모르게 유통되고 악용될 소지가 큰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계속 시대에 뒤처져선 곤란하다. 선진국처럼 개인 식별 정보는 수집 단계부터 최소화해 오남용 소지를 줄이자. 이런 토대 위에 익명 정보는 그 활용도를 높이자. 그래야 최소한의 트렌드조차 파악하지 못해 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은 물론 원자료 확보가 차단돼 과학·의료 실험까지 막혀 있는 빅데이터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국회·재계·전문가가 함께 새로운 데이터 활용 해법의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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