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여심을 잡아라"… 여성 참정권 도입 후 첫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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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쿠웨이트 총선에 출마한 여성 후보자의 선거 포스터 앞에 26일 여성 지지자가 앉아 있다. 이번 총선에선 여성 후보 32명이 출마했다. [쿠웨이트시티 로이터=뉴시스]

29일 총선을 앞둔 쿠웨이트 유권자들이 들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해 5월 여성의 참정권을 도입한 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함께 쿠웨이트의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여성 운동가 루루아 알카타미는 두 팔을 들어올리며 이렇게 외쳤다. 27일 밤 쿠웨이트 시내 압둘라 알살림 지역의 마을회관에서다. 낮에는 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유세는 주로 밤에 이뤄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히잡(머리를 감추기 위해 여성이 쓰는 두건)을 쓰지 않은 여성이 이런 연설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또 수백 명의 청중이 여성 후보의 유세를 듣는 광경도 그랬다. "선거의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오늘 이런 유세장 모습에도 만족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달성했다"고 알카타미는 말했다. 여성이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처음 행사하는 것 말고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유명한 여권 운동가인 롤라 다슈티의 선거사무실에는 남성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50개 의석을 놓고 400여 명의 남성 후보와 경합하는 32명의 여성 후보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과 지지도 높아가고 있다.

'여풍'이 이번 총선의 판도를 좌우할 변수로 등장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여성 유권자가 약 20만 명으로 14만여 명의 남성 유권자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여성은 유권자로 자동 등록되지만 남성은 개별적으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고 군인은 투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남성 후보들도 여성 표를 모으기 위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여성참정권 부여에 반대했던 후보들도 여성의 표심을 잡기에 바쁘다. 지난해 5월 의회 표결에서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여성참정권에 강력히 반발했던 왈리 알타브타위 의원도 "세상이 바뀐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한 반감은 아직 강하다. 적지 않은 남성 후보들은 '디와니야'라는 남성 전용클럽에서 유세를 한다. 여성 후보들의 포스터는 떼어지거나 훼손되고 있다. 여성 후보들은 사퇴하라는 협박전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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