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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7년 전엔 4:4 합헌…문 정부서 재판관 6명 교체 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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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낙태 리포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 의뢰로 실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44세 여성 응답자 1만 명 중 75.4%가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스1]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 의뢰로 실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44세 여성 응답자 1만 명 중 75.4%가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스1]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4일 발표한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는 낙태죄 위헌 여부 판단을 앞둔 헌법재판소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4월 18일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만큼 3월 마지막 주 심판선고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헌재 관계자는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주요 쟁점의 경우 재판관들이 임기를 마치기 전 결정을 내려 왔던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 4명 중 3명(75.4%)은 현재 헌법소원이 제기된 낙태죄(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달 헌법소원 심판선고 주목 #생명권과 여성 자기 결정권 쟁점 #학계 “법으로 우선순위 판단보다 #비자발적 임신 영향 고려할 때”

1953년 제정된 두 법률은 낙태를 한 여성(1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원 이하)과 이를 도운 의사(2년 이하)를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017년 2월, 69회의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정모씨는 두 법률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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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법무법인 우면)는 “사회적 쟁점에 대한 위헌 여부 심리에선 여론도 배제할 수 없는 요소”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때도 헌법재판관 중 절반(4명)이 위헌 입장이었다”며 “올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낙태를 허용한 현행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낙태죄의 핵심 쟁점은 ▶태아를 생명으로 볼 수 있는지 ▶태아의 생명권을 여성의 임신 기한에 따라 구별할 수 있는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봐야 하는지 등이다.

종교계는 “임신 초기 단계의 태아도 생명으로 볼 수 있다”며 낙태를 반대하고 있고 여성계와 시민단체는 “임신 초·중기까지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어느 법익이 우월하다는 판단보다는 비자발적 임신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해 낙태죄를 재고해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헌재는 2012년 낙태죄에 대한 첫 번째 위헌결정에서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4로 갈려 합헌이라 판단했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이 위헌 의사를 밝혀야 특정 법률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다. 당시 1명의 재판관은 공석이었고 이강국 소장과 이동흡·목영준·송두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김종대·민형기·박한철·이정미 4명의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냈다.

그때와 지금의 헌법재판관 구성이 모두 달라진 것도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에 주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당시 재판관은 모두 퇴임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해만 6명의 재판관이 새 임기를 시작했다. 이 6명의 재판관 중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낙태죄에 대한 위헌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천한 이석태 재판관과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김기영 재판관,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이종석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낙태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남은 3명(서기석·조용호·이선애 재판관)의 입장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시대를 앞서가기보다 오히려 후발주자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며 “낙태 허용에 대해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다시 합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법무부는 낙태죄에 대해 “합헌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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