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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소년소녀 제 발로 무장단체 찾는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소년병(少年兵)이 되기 전엔 할머니와 거리에서 땅콩을 팔았어요. 먹을 게 없어 고달팠죠. 어느 날 친구가 무장단체에 들어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우릴 지켜줄 거라고. 제게 남은 선택지는 그것뿐이었어요. 입단식이 끝나자 형들이 총을 줬어요. 우리 영역에 들어온 적을 모두 죽이라면서요. 지금 전 그곳을 탈출해 보호소에 있어요. 안전한 곳이지만 언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정비공이 되고 싶은데….”(콩고민주공화국, 12세 소년 요제프)

“'셀레카'라는 무장단체 남성들이 집에 들이닥쳐 광산에서 일하는 엄마와 아빠를 죽였어요. 기르던 가축과 집기도 모두 빼앗아갔죠. 전 아직도 아버지가 어디 묻혔는지 몰라요. 오빠는 셀레카에 대항하는 무장단체에 들어갔어요. 부모님의 원수를 갚으려고요. 저 역시 오빠를 따라 단체의 일원이 됐죠.”(중앙아프리카공화국, 13세 소녀 셀린느)

분쟁지역 아동과 청소년이 소년병의 길을 택하고 있다. 12일 월드비전은 UN이 지정한 ‘소년병 반대의 날’을 맞아 소년병 실태 현장보고서 ‘노 초이스’(No Choice)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콜롬비아‧콩고민주공화국‧남수단‧이라크 5개 분쟁국에서 실제 무장조직에 가담한 11~18세 아동과 청소년, 부모, 사회 지도자 등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담았다. 위 두 사례는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노 초이스' 내용은 아동들이 무력에 의해 무장단체에 강제 동원됐을 것이란 인식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이들 스스로 무장단체에 가담하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교육과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 빈곤, 가정불화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17세에 남수단 무장단체에 가담했던 요셰프는 월드비전이 마련한 구호시설에서 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17세에 남수단 무장단체에 가담했던 요셰프는 월드비전이 마련한 구호시설에서 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이들은 생존뿐 아니라 이주와 폭력이 계속되는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과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하고자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남자 어린이는 "소년병이 된 친구가 새로운 신발과 돈을 가져오는 걸 보고 나도 따라서 소년병이 됐다"고 말했다. 총격전이 잦은 환경에서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아서, 또래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서 가담했다고 답한 이도 많았다.

남자아이만 소년병이 된 건 아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남수단에서 풀려난 소년병 934명 중 30%가 여성이었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소년병 전체 중 30%가 여성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여자아이는 용의자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작아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하고, 요리와 빨래 등 단체의 안살림을 담당한다. 콩고민주공화국 일부 지역에선 무장단체의 안전을 기원하는 종교적 의식에 동원된다. 남수단에서 소년병이 된 여자 어린이·청소년은 직접 총을 들고 참전할 뿐만 아니라 결혼과 출산까지 강요당한다.

U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최소 2만2000명의 소년병이 동원됐다. 2016년 대비 35%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가정과 학교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제 발로 무장단체를 찾는 아동과 청소년이 꾸준히 늘고 있다.

콜롬비아의 월드비전 보호소에서 축구를 하는 소년들. [사진 월드비전]

콜롬비아의 월드비전 보호소에서 축구를 하는 소년들. [사진 월드비전]

이에 월드비전은 소년병의 무장단체 탈출을 위해 힘쓰고 있다. 소년병으로 긴 시간을 보낸 이들은 무장단체에서 벗어난 후에도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어렵다. 기술 교육과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하는 지원이 절실하다. 김동주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은 "현재 각 분쟁국에 피해구제 핫라인(hot-line)을 만들어 기술 훈련 및 CFS(심리치료센터)를 운영 중"이라며 "앞으로도 국가 간 전쟁이나 내전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지역사회 기반의 지원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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