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도 할 말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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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우 조선의 폐업과 근로자들의 대량 실직이 일보 직전에 있다. 과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폐업은 정당한 것이며 실직 사태는 불가피한 것인가.
회사측이 격심한 노사 분규를 수습하지 못해 끝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으며 근로자 측이 한치의 양보 없이 파업 결정을 함으로써 대우 조선 사태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직 마지막 협상 여지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고 심각한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우 조선은 전 종업원이 일치 단결하여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도 회생할지 말지 한 어려운 기업이다. 정부와 회사측이 함께 마련한 경영 정상화 방안이 차질 없이 이행된다 해도 누적 부실을 극복하고 경영 정상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실정이다.
상황이 그런 지경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전개되고 있는 사태는 계속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경영 정상화 노력이 진행중인 가운데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노사간 대립과 종업원들간의 갈등·마찰이 깊어가고 있으며 관리직 사원 3천명이 집단 사표를 내더니 드디어 노조 측의 파업 결정과 회사의 폐업 방침이 내려지고 말았다.
우리는 대우 조선의 진통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우려한다기보다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많은 국민들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대우 조선은 1차적 부실 책임이 회사측에 있고, 그 부실이 끊임없는 노사 분규로 심화되었지만 그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고 국민 부담으로 경영 정상화를 시키기로 결론이 나 있었다.
그런데도 근로자들은 52.9%에 이르는 고율 임금 인상 요구, 노조의 불법 집회와 사내 폭력 사태로 회사가 점점 구제 불능의 지경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정부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 계획을 세울 때만해도 특혜 시비 등 이견이 많았으나 정치·사회적 상황이나 국민 경제적 고려에서 무리해서라도 대우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으로 결정을 한 것이며 종국에 그 부담을 안게 되는 국민들도 이 같은 결정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원 방안을 마련할 때 전제한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과 노사 분규 자제 노력의 약속은 어디 갔는가. 1조3천억원의 빚더미에 올라 있는 회사에서 과연 임금을 53% 올려 줄 수 있는 것인가. 회사측은 정상화 노력을 다했는가.
대우 조선은 1개 기업 차원을 넘은 규모의 회사다. 국내 조선 공업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고용 인원만도 1만3천명에 이르는 국민적 기업, 준공 기업이라 할 수 있다.
7천명의 하청 기업 종업원과 15만명의 거제 주민이 대우 조선에 생계를 걸고 있기도 하다.
하루에 이자만도 4억불씩 지불해야 하는 이 회사가 빚더미에서 무리한 임금을 주고 문닫게 되면 그 희생은 누가 당하는가.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고, 조선 일감은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국민들은 더 큰 부담을 떠 안게 될게 뻔하다. 국내 조선 업계의 노사 분규에 이미 일본·대만 등 제3국의 업계가 미소짓는다지 않은가.
격화되는 노사 분규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임금 분쟁이 쟁점이다. 회사측은 올해에는 임금을 동결하지만 연차적으로 임금을 인상해 오는 91년까지는 동종 타업체 수준으로 올려줄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한 임금 보전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부실 기업이 도태되는 원칙론을 찬성하면서도 대우 조선이 막상 문을 닫을 때의 파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폐업하게 되면 당장 정치·사회·경제적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고, 그렇지 않아도 우려되는 실업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회사측이 판단하듯이 「잘못된 노동 운동」에 쐐기를 박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또 정부가 검토한 바 있는 공단 전환도 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전환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근로자들은 지나친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회사 부실을 더욱 가중시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하기 보다 회사를 살리고 물건을 만들어 내 그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로자들도 더 늦기 전에 분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로 복귀하는 것이 옳다. 다함께 국민 경제도 생각해야 할 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침 세계 조선 경기가 회복되는 시기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조금만 더 인내하고 이해하면 약속된 미래가 가능하다고 본다.
조선 발주는 한번 발길을 외국으로 돌리면 다시 끌어당기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근로자들이 다시 한번 생각을 고쳐 잡기를 거듭 촉구한다. 파업 결의는 했으되 파업을 실행에 옮기지 말고 일을 할 것이며, 회사측도 폐업을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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