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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매출 12조, 그 회사엔 사옥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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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S-Oil, 국제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데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늘어난 2212억원이다. 작년 당기 순익은 6500억원이었다. 한눈팔지 않고 정유 시설에만 우직하게 투자해온 덕이다. 그런데 63빌딩에 세들어 있다. 직영주유소는 몇개 안된다. 이 회사가 사는 법은 …

30년간 오직 한 우물만 팠다. 다른 정유 업체는 주유소와 연계한 정비.편의점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지만 이 회사는 단지 정유사업에만 몰두했다. 그러면서 정유 분야에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투자했다. 1990년대 초반 1조5000억원을 들여 벙커C유에서 휘발유.경유 등을 뽑아내는 '정제 고도화 시설'을 지었다. 스스로 정제한 원유에서 나온 벙커C유를 전부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정유 회사는 국내에서 이 업체뿐이다. 28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에쓰오일(S-Oil)의 이야기다.

에쓰오일은 76년 쌍용양회와 이란국영석유회사(NIOC)가 50 대 50으로 합작해 설립했다. 80년 쌍용양회가 NIOC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이름도 쌍용정유로 바꿨다.

그러다 91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 아람코와 합작했다. 지분 35%를 4억 달러에 넘겼다. 정제 고도화 시설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고 제휴했다. 99년 말엔 쌍용그룹에서 분리됐고 이듬해 간판도 에쓰오일로 바꿔 달았다. 외환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쌍용양회는 주식(28.4%)을 에쓰오일에 팔았다.

정제 고도화 시설에 투자한 덕에 에쓰오일은 요즘 신바람이 났다. 원유 정제 마진이 줄면서 다른 업체들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줄었으나 에쓰오일은 2212억원으로 전년 동기(1992억원)보다 오히려 11% 늘었다. 정제 마진이 감소한 것은 원유를 정제할 때 전체 석유제품의 50% 가까이 나오는 벙커C유 때문이다. 현재 두바이유 국제시세가 배럴당 65달러 선인데, 벙커C유는 그보다도 싼 배럴당 50달러 정도다. 그냥 팔면 밑진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이 벙커C유를 처리해 배럴당 80달러 전후인 휘발유.경유 등을 생산한다.

이 회사 김동철 부사장은 "고도화 시설 투자에서 보듯 정유 분야에는 적극 투자하지만 그 외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게 에쓰오일의 경영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사옥도 없다. 지난해 매출 12조원에 당기 순익 6500억원인 기업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세들어 있다. 주유소 직영도 거의 않는다. 판매가 아니라 정유가 본분이어서다. 전체 주유소.충전소 1800여 곳 중 약 80곳 정도만 직영이다. 주유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보니 토지도 별로 없다. 현재 보유한 토지의 장부가격은 3200억원으로 1조5000억원 정도인 다른 정유업체의 20% 수준이다.

에쓰오일은 수출 기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석유 제품 6조8900억원어치를 일본.중국 등지에 수출했다. 내수 판매는 5조3500억원이었다. 전체 매출의 56%가 수출이다. 정유업체 중 매출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버는 곳은 에쓰오일뿐이다. 94년부터 계속 수출이 50%를 넘었다. 김 부사장은 "정유 사업 후발주자여서 내수 시장을 파고들기가 어려웠다"며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다른 정유회사와는 달리 해외유전 개발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에쓰오일 측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해외유전 개발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의 도움을 받아 원유를 안정적으로 받고 있다"고 말한다. 에쓰오일은 91년 아람코와 합작하면서 '20년간 에쓰오일(당시 쌍용정유)이 필요로 하는 모든 원유를 아람코가 공급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었다. 이 때문에 그해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아람코는 다른 외국의 정유회사에는 원유 판매량을 줄였으나 에쓰오일에는 정상적으로 원유를 공급했다. 에쓰오일 측은 20년 기간이 끝나는 2011년 이후에도 같은 내용의 계약이 연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4월 에쓰오일은 2010년까지 3조6000억원을 들여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제2 정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48만 배럴을 정제하는 규모로, 고도화 시설까지 완전히 갖춘다는 계획이다. 완공되면 에쓰오일의 정제 능력은 현재 하루 58만 배럴에서 106만 배럴로 늘어 SK㈜(111만5000배럴, SK인천정유 포함)에 이어 국내 2위로 올라선다. 회사 측은 "현재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여서 제2 공장의 물량은 거의 모두 수출하게 될 것"이라며 "그리되면 수출 비중이 8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제2 공장 건립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에쓰오일은 보유 중인 자사주 지분 28.4%를 인수할 기업을 찾고 있다. 업계에서는 에쓰오일의 주가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하면 28.4%의 지분 가치는 적어도 3조원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에쓰오일은 공장 주변 농가에서 쌀을 사들이는 등 지역사회 공헌 활동도 펴고 있다. 추곡 수매는 2001년 시작했다. 지금은 대기업들이 농촌을 돕기 위해 쌀 수매를 많이 하지만, 당시는 드문 일이었다. 에쓰오일은 수매량을 2001년 7000여 가마에서 지난해 1만3500여 가마로 두 배로 늘렸고 앞으로도 쌀 구매량을 더 늘릴 계획이다.

권혁주 기자

◆ 에쓰오일 30년

-1976년 : 쌍용양회와 이란국영석유회사(NIOC)가 50대 50으로 합작, 한.이석유 설립

-1980년 : NIOC 지분 50%를 쌍용양회가 전량 인수. 쌍용정유로 개명

-1981년 : 상업 생산 시작

-1987년 : 주식 상장

-1991년 :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쌍용정유 지분 35%를 4억 달러에 인수. 정제고도화시설 건설 개시

-1996년 : 정제고도화시설 상업 운전 시작

-1999년 : 쌍용양회의 보유지분 28.4%를 자사주로 인수, 쌍용그룹에서 독립

-2000년 : 에쓰오일(S-Oil)로 개명

-2006년 : 3조6000억 투자해 충남 서산에 제2 공장 건설계획 발표

◆ 에쓰오일은

-2005년 매출 : 12조2300억원

-2005년 당기순이익 : 6500억원

-직원 수 : 2400명

-하루 정제 능력 : 58만 배럴

-전국 주유소 및 충전소 수 : 1803개

-국내시장 점유율 : 15%

-이사회 의장 : 김선동 회장

-최고경영자(CEO) : 사미르 투바옙(사우디아라비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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