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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할 수있겠습니까?"…일본 초계기 일주일 뒤 중국군 들어온 이유

중앙일보

입력

Focus 인사이드-최현호 

작년 12월 20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동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중간구역에서 조난한 북한 조난 어선을 구조하던 우리 해경 함정을 지원한 해군 구축함이 무기 조준에 사용하는 레이더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한일간에 긴장이 높아졌다. 일본은 레이더 탐지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조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신호정보 수집 각축장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 '눈', '귀' #일본과 러시아 첨단 장비 동원

그로부터 며칠 후인 12월 27일, 이번에는 중국군 Y-9 정찰기 1대가 제주도 남쪽을 거쳐 강릉 동쪽 해상까지 북상한 뒤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찰기는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여러 차례 침범해 우리 공군 전투기들이 긴급 출동했다.

2018년 12월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중국의 Y-9JB 전자정보 수집기 [사진 일본 방위성]

2018년 12월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중국의 Y-9JB 전자정보 수집기 [사진 일본 방위성]

일본의 레이더 조준 주장과 중국군 정찰기 비행 사이에는 별 연관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현대전의 중요한 부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시진트(SIGINT: Signal Intelligence)로 불리는 신호정보가 관련되어 있다. 신호정보에는 레이더, 통신, 무기를 운용하면서 나오는 각종 전파가 있다. 이런 신호들을 사전에 파악해 분류하고 신호체계와 관련된 적의 모든 정보를 사전에 수집하는 작전은 현대전에서는 필수다.

일본이 레이더 조준을 탐지했다고 주장하는 P-1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는 평상시 수집된 적성국이나 우군의 전자장비에서 나오는 전파 특성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즉 지속해서 정보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으면 오작동의 가능성이 있다.

일본 주장은 신호정보 수집 결과를 활용한 것이고, 중국 정찰기 비행은 필요한 전자정보를 수집하는 정찰 활동이다. 이번 일본과의 사건으로 레이더와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많이 언급되었지만, 신호정보 수집은 상당히 폭넓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일본 공중자위대가 시범운용 중인 전자전기 C-2 ELINT. [사진 유튜브 캡처]

일본 공중자위대가 시범운용 중인 전자전기 C-2 ELINT. [사진 유튜브 캡처]

신호정보는 크게 통신정보(COMMINT)와 전자정보(ELINT)로 나뉜다. 통신정보 수집은 적성국의 무선통신을 엿들어 발신원을 탐지하고, 통신 내용을 분석해 적성국의 의도나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이 일본의 무전을 감청한 것이 여기에 속한다.

전자정보 수집은 레이더 전파 등을 포착해 발신원을 찾고 분석하며, 그 특성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레이더 경보 수신기를 위한 데이터 수집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모든 수집 활동은 전자전을 위한 사전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전자전은 적 레이더를 방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적 지휘통제망 교란, 신호정보 차단 등 상당히 많은 활동이 포함된다. 북한의 GPS 신호 방해도 전자전에 속한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는 러시아도 전자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레이더나 통신 교란 외에도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의 휴대폰으로 잘못된 기만정보를 전송하는 등 다양한 전자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은 전통적인 힘의 대결장이기도 하지만, 각종 정보 수집을 위한 치열한 각축장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다양한 첨단 장비들을 동원하고 있다.

미국은 RC-135 정찰기, MC-12W 정찰기, 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의 자산을 일본 등에 전개해 놓고 있다. 일본은 EP-3, YS-11 전자정보 수집기를 운영했었고, 최근에는 EC-2 전자정보 수집기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서 도입한 An-30과 Tu-154을 개조한 항공기 외에 Y-8, Y-9 수송기를 개조한 다양한 신호정보 수집기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12월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접근한 정찰기도 Y-9 수송기를 개조한 Y-9JB 전자정보수집기였다. 러시아는 IL-20과 Tu-214R 신호정보 수집기를 운용하고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 인공섬들이 중국의 신호정보 수집기지가 되고 있다. [사진 amti.csis.org]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 인공섬들이 중국의 신호정보 수집기지가 되고 있다. [사진 amti.csis.org]

신호정보 수집은 바다에서도 이루어진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해양조사선으로 주로 해저 지형을 파악한다. 그러나 잠수함 탐지를 위한 수중 음향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이 해양조사선을 운용하고 있다.

해양조사선 외에도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정보수집함도 운용된다. 러시아는 1980년대부터 발잠급 정보수집함을 운용했는데, 태평양 함대에 배속된 2척은 예비함으로 보관되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 초반부터 813식 정보수집함을 운용했다. 1999년부터는 동디다오급으로 불리는 815식 정보수집함을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2018년 말까지 9척을 운용하고 있다.

동디다오급 정보수집함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인근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점차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4년, 중국은 미국의 초청을 받아 하와이 인근에서 열리는 환태평양 군사훈련 ‘림팩 2014’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훈련 해역 바깥에 동디다오급 정보수집함을 파견해 훈련 상황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중국은 림팩 훈련에 초청받지 못한 2018년에도 정보수집함을 파견해 훈련을 감시했다.

중국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8년 9월 시베리아 동부 연해주 일대에서 러시아, 중국, 몽골이 참가한 ‘보스토크 2018’ 훈련이 열렸다. 중국은 훈련지역 인근 해역에 동디다오급 정보수집함을 파견해 러시아군의 정보를 수집했다.

미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정보 수집 활동을 한 중국 해군의 815식 정보수집함 [사진 lowyinstitute.org]

미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정보 수집 활동을 한 중국 해군의 815식 정보수집함 [사진 lowyinstitute.org]

바다에서의 중국의 정보 수집 활동은 수중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공섬을 중심으로 수중 음향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활동은 이 해역에서 작전하는 미 해군 잠수함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방국도 가리지 않는 중국의 신호정보 수집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ADECS 2018 콘퍼런스에서 중국의 신호정보 수집 능력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영국 시티 대학교의 데이비드 스튜플스 교수는 중국 신호정보 관련 인력은 약 20만 명, 추정 예산은 최대 15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당시 중국의 국방예산은 15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이 신호정보 분야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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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플스 교수는 중국이 세계 전역에 수십 개의 신호정보 수집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주에서도 신호정보 수집을 위해 다양한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고 밝혔다. 중국은 인공위성들이 수집한 정보를 전송받기 위해 세계 각지에 위성 기지국도 건설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은 중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

신호정보 수집 영역을 넓혀나가는 주변국과 달리 우리의 신호정보 수집은 주로 북한을 상대로 이루어져 왔다. 금강 정찰기, 지상의 감청시설, 그리고 정보함이 신호정보 수집 활동에 쓰이고 있지만, 주변국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달 발표된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이 빠졌다. 주적이라는 표현이 빠졌다고 위협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주변의 위협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우리도 이제 북한을 상대로 해오던 신호정보 수집 활동을 주변의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확대해야 할 때다.

최현호 군사 칼럼니스트·밀리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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