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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우아한 막장이라니…불협화음 속 빛나는 인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51) 영화 '마지막 4중주'

[※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현악 4중주는 보통 제1,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총 4대의 현악기를 가지고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악기가 얼마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가' 일 거라 생각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이런 '조화와 균형'이 중요한 현악 4중주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지막 4중주' 입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서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 '푸가'가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서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 '푸가'가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 '푸가'는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첼리스트 피터(크리스토퍼 월켄 분)는 공연 연습 중 손가락이 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병원에 간 그는 의사로부터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죠.

이후 그는 단원들에게 자신의 병을 고백합니다. 약물로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테지만 앞으로 연주는 힘들 것 같다고요. 푸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빠지고 대체할 첼리스트까지 소개하죠. 단원들은 단호하고도 담담한 그의 고백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데요. 이때부터 이들 사이에 숨겨진 갈등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푸가'에서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첼리스트 피터 역의 크리스토퍼 월켄.

'푸가'에서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첼리스트 피터 역의 크리스토퍼 월켄.

먼저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푸가'는 4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첼리스트 피터와 제1, 2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마크 이바니어 분), 로버트(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분), 마지막으로 비올리스트 줄리엣(캐서린 키너 분)까지요.

피터와 줄리엣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피터는 줄리엣 엄마의 동료로, 어릴 적 엄마를 잃은 그녀를 피터 부부가 거두어 주었죠. 줄리엣과 로버트는 부부 사이로 그들 사이엔 '알렉스'라는 딸이 있습니다. 부모의 영향을 물려받아 그녀 역시 바이올린 연주자죠.

'푸가'의 비올리스트 줄리엣 역의 캐서린 키너와 제2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역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둘은 음악적 동료이자 딸 하나를 둔 부부다.

'푸가'의 비올리스트 줄리엣 역의 캐서린 키너와 제2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역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둘은 음악적 동료이자 딸 하나를 둔 부부다.

로버트와 다니엘은 각각 제2 바이올린, 제1 바이올린으로써 라이벌 의식이 있습니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제2 바이올린이 서브 개념이라 생각한 탓이겠죠. 마지막으로 다니엘과 피터는 사제지간입니다. 25년 전 푸가를 만들 때 다니엘은 피터에게 도움을 구하며 4명의 완벽한 단원이 완성되죠. 여기까지가 표면에 드러난 그들의 관계입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의 복잡한 인물 관계도. [제작 현예슬]

영화 '마지막 4중주'의 복잡한 인물 관계도. [제작 현예슬]

좀 더 들여다보면 막장 코드 숨어있는데요. 줄리엣과 다니엘은 학창시절 연인 사이였습니다. 현 남편 로버트가 다니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건 음악 때문만은 아니라는걸 여기서 느꼈습니다. 이 관계 중 최악은 바로 다니엘과 알렉스가 서로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전 남자친구이자 스승인 다니엘과의 사랑이라니…. 제 상식으로는 알렉스의 머릿속이 궁금할 뿐인데요. 어쨌든 영화는 이런 복잡하고도 은밀한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현악기의 선율과 함께 그려냅니다.

'푸가'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역의 마크 이바니어.

'푸가'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역의 마크 이바니어.

마지막 15분은 25주년 기념 공연 장면을 보여주는데요.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으로 난도가 높은 곡입니다. 보통 현악 4중주가 4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므로 악기 간의 음정이 맞지 않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할 만큼 연주자들에게는 힘든 곡이라 전해지는데요.

약이 차도를 보여 마지막 공연 무대에 오른 피터는 연주 도중 결국 손가락 마비 증상을 보입니다. 급기야 연주를 중단하고 관객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하죠. 자신의 시간은 이제 끝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어찌 보면 서글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담백한 인사와 함께 무대 뒤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25주년 기념 공연 장면. 실제 연주자들처럼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25주년 기념 공연 장면. 실제 연주자들처럼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클래식 애호가라면 반가워할 특별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피터의 아내로 등장하는 스웨덴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와 피터의 빈자리를 채워준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니나 리'인데요. 특히 '니나 리'는 영화에 나오는 곡들을 실제로 연주한 브렌타노 현악 4중주단에서 활동한다고 합니다. 이 두 아티스트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영화를 소개하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인생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
각기 다른 불협화음이 어떻게 화음을 내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4중주

영화 '마지막 4중주' 메인 포스터.

영화 '마지막 4중주' 메인 포스터.

감독: 야론 질버만
각본: 야론 질버만, 세스 그로스먼
출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마크 이바니어, 이모겐 푸츠
촬영: 프레더릭 엘머스
음악: 안젤로 바달라멘티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05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3년 7월 25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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