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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사는 여자와 털어야 사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49)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의 메리 셸리(좌)와 '미스터 스마일'의 포레스트 터커(우). [그림 현예슬]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의 메리 셸리(좌)와 '미스터 스마일'의 포레스트 터커(우). [그림 현예슬]

오늘은 최근 일주일 차이로 개봉한 영화 두편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 알려진 메리 셸리와 한평생 취미처럼 은행을 털어온 은행털이범 포레스트 터커의 이야기인데요. 두 영화 모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인물들이 각각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써야 사는 여자, 메리 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 이야기를 다룬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메리 셸리(엘르 패닝 분)와 여동생(벨 파울리 분). [사진 영화사 찬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 이야기를 다룬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메리 셸리(엘르 패닝 분)와 여동생(벨 파울리 분). [사진 영화사 찬란]

사회철학자 아버지와 여권 신장론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메리는 어딘가에 결핍이 있는 듯한 채로 성장합니다. 아무래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듯한데요. 친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얼마 후 사망했고 이후 아버지,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 밑에서 자랐죠.

어느 날 메리는 아버지의 제자로 들어온 시인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녀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요. 16세. 사랑에 빠지기 쉬운 나이라지만 그가 바람둥이에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던 거죠. 여동생을 제외하고 세상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에도 그녀는 자신의 사랑 하나만을 믿고 퍼시와 사랑의 도피를 떠납니다.

메리 셸리의 남편이자 시인으로 등장하는 퍼시 셸리(더글라스 부스 분).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지만 메리를 사랑해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사진 영화사 찬란]

메리 셸리의 남편이자 시인으로 등장하는 퍼시 셸리(더글라스 부스 분).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지만 메리를 사랑해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사진 영화사 찬란]

메리 셸리를 연기한 배우는 다코타 패닝의 동생으로 알려진 엘르 패닝입니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무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요. 만약 이 장면들이 의도 한바라면 그녀의 연기는 천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녀의 연기 폭이 메리 셸리의 인생 굴곡을 표현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무표정 뒤에 가려진 그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예고편만 봤을 때는 남성들만 주목받던 시대에서 여성 작가로서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작품을 당당히 고하는 페미니즘적 내용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예상했던 내용도 일부 담겨 있지만, 새엄마와의 이야기는 신데렐라에서 구박받던 스토리에 가깝고, 사랑의 도피 이후 책임감 없고 방탕한 삶을 사는 남편과 그래도 그를 사랑하는 메리 셸리의 이야기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정작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지(이를 위해 메리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끝부분에 잠깐 보여줍니다. 그마저도 남편 퍼시의 고백으로 인해 그녀가 온전히 '프랑켄슈타인'의 저자가 된 셈이니 김이 빠졌달까요? 저에겐 다소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털어야 사는 남자, 포레스트 터커

영화 '미스터 스마일'에서 포레스트 터커 역을 맡은 로버트 레드포드. 사진만 보면 은행의 우수고객 같지만 은행 터는 장면이다. [사진 영화사 티캐스트]

영화 '미스터 스마일'에서 포레스트 터커 역을 맡은 로버트 레드포드. 사진만 보면 은행의 우수고객 같지만 은행 터는 장면이다. [사진 영화사 티캐스트]

푸른색 정장에 중절모를 쓴 노년의 신사가 은행에 들어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행원 앞으로 걸어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죠.
"(주머니 안쪽에 든 권총을 보이며)이 가방에 현금을 채워주시겠어요?"

약 60년 동안의 은행털이. 총 30번의 탈옥 시도. 그중 18번의 성공의 주인공 포레스트 터커의 이야기입니다. 체포했던 형사들조차 '은혜롭다'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전설이 되어버린 포레스트 터커는 폭력을 쓰거나 협박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은행을 터는 재능이 있었죠.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가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은행 터는 일 자체를 즐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많이 아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즐기게 되고, 전문가(!)에 이른 거죠(교훈이랄까요?).

포레스트 터커의 마지막 연인 쥬얼 역을 맡은 씨씨 스페이식. 이 역은 실제로 그의 마지막 부인인 '쥬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사진 영화사 티캐스트]

포레스트 터커의 마지막 연인 쥬얼 역을 맡은 씨씨 스페이식. 이 역은 실제로 그의 마지막 부인인 '쥬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사진 영화사 티캐스트]

영화 속에선 그와 뗄 수 없는 인물 두 명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그의 마지막 사랑 '쥬얼(씨씨 스페이식 분)'이고 다른 한 명은 담당 형사 '존(케이시 애플렉 분)'인데요. 우연히 고속도로 길 위에서 마주친 남자 포레스트에 묘한 끌림을 느껴 끝내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서도 그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쥬얼과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가던 중 인간적인 그의 범행 방식에  매력을 느낀 형사 존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스토리에 힘을 보태 줍니다.

담당 형사 존 역을 맡은 케이시 애플랙. 자신이 잡아야 하는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포레스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사진 영화사 티캐스트]

담당 형사 존 역을 맡은 케이시 애플랙. 자신이 잡아야 하는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포레스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사진 영화사 티캐스트]

영화 속에서 특별한 장면을 꼽으라면 포레스트가 교도소에서 무려 열여덟번이나 탈출하는 장면을 들 수 있겠는데요. 이 장면은 실제 로버트 레드포드의 전성기 시절 사진으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젊은 시절을 보지 못한 저로서는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는데요. 지금 봐도 여심을 사로잡을 만한 빼어난 미남이어서 놀랐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연기 생활의 은퇴를 알렸습니다.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선사한 그가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소식은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문구를 생각나게 하는데요. '은퇴작으로 완벽한 영화'라는 평을 받은 그의 마지막을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좌)'과 '미스터 스마일(우)' 메인 포스터 [사진 각 영화사 제공]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좌)'과 '미스터 스마일(우)' 메인 포스터 [사진 각 영화사 제공]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감독·각본: 하이파 알 만수르
출연: 엘르 패닝, 더글라스 부스, 벤 하디
촬영: 데이비드 웅가로
음악: 에밀리아 워너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0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12월 20일

미스터 스마일
감독: 데이빗 로워리
각본: 데이빗 로워리, 데이빗 그란
출연: 로버트 레드포드, 케이시 애플렉, 씨씨 스페이식
촬영: 조 앤더슨
음악: 다니엘 하트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3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12월 27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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