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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국 표준형 원자로’ 첫 상업운전…장관 두번 한 보람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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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94년 12월에서 96년 9월까지 두 번째 과학기술처 장관에 재임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 한국전력기술(KEPCO) 사장 시절인 84년 시작한 ‘한국 표준형 원자로(KSNP)’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일이다. KSNP는 89년 계통 설계를 마무리하고 그해 12월 착공한 전남 영광의 한빛 3호기에 처음 적용돼 과기처 장관 재임 중이던 95년 3월 31일 첫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4호기도 96년 1월에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KSNP는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사의 1300만kW급 ‘시스템 80’을 모델로 한국 실정에 맞는 1000만kW급 2세대 가압경수로형 원자로를 공동 설계해 완성한 기종이다. 2005년 수출을 목적으로 OPR-1000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까지 12기를 국내에 시공해 안전하게 가동하고 있으며 한국이 자랑하는 원전 산업의 핵심이 됐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22) #<75> 원자력 선진국 기틀 닦다 #표준원전 적용한 원전 완공 #한빛 3,4호기 상업운전 개시 #당시 개발 OPR-1000 진화해 #APR-1400 이어 APR+ 개발 #APR-1400은 미국에서 인증 #APR+는 4중 철통 안전설계 #한국 과학기술의 업적 살려야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 중인 바라카 원전 1, 2호기의 모습. 3세대 한국 표준형 원자로인 APR1400의 첫 수출 사례다. 한국은 2009년 UAE에 원전 4기를 짓는 계약을 맺고 세계 5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중앙포토]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 중인 바라카 원전 1, 2호기의 모습. 3세대 한국 표준형 원자로인 APR1400의 첫 수출 사례다. 한국은 2009년 UAE에 원전 4기를 짓는 계약을 맺고 세계 5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중앙포토]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성능과 안전성이 더욱 강화된 1400만kW급 3세대 가압경수로형 원자로 APR-1400을 설계해 국내는 물론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에 4기를 한국 최초로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개선된 원전 안전설계 지침을 따른 APR 1400 설계 모델은 확장된 한국 전력망의 기초 모델로서 한국과 UAE는 물론 원전 건설을 계획하거나 추진하는 여러 나라의 기본 고려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APR-1400은 2018년 9월 28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승인서 본심사를 통과해 개가를 올렸다. 본심사 통과는 표준설계가 안전규제 요건을 만족했음을 확인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프랑스 국영 원자력발전 설비업체인 아레바(AREVA)와 일본의 미쓰비시가 2007년 12월 이를 신청했지만, 아레바는 심사가 중단됐고 미쓰비시는 심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APR-1400의 안전성과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다. 본심사 통과는 과학기술과 엔지니어링, 그리고 에너지 분야에서 국가적 경사인데도 너무도 조용하게 지나가서 유감이다.

2018년 3월 아랍에미리트(UAE)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가운제)이 26일 오후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완료 행사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3월 아랍에미리트(UAE)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가운제)이 26일 오후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완료 행사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OPR-1000과 APR-1400에 이어 1500만kW급 차세대 신형원전인 APR+도 2007년 8월 개발을 시작해 2014년 8월 정부의 표준설계인가를 얻으면서 개발을 마쳤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원인이 된 전원 상실은 물론 항공기 충돌이나 화재 등 극단적인 돌발 상황에도 원전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격리설계를 적용하고 안전설비를 4중화했다.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한 수출 선도형 고성능 고유연료(HIPER)를 사용하는 등 완전히 한국 고유 기술로 개발했다. 전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한국이 독자적으로 확보한 셈이다.
한국은 이제 시공 능력은 물론 기술력으로 봐도 세계 원자력 에너지 분야의 선도 국가다. 이는 한 세대 이상의 시간에 걸쳐 수많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자가 눈물과 땀으로 이룩한 결과다. 이런 과학기술 업적을 경제발전과 국민 복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합리적 결단이 필요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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