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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도 개입” “당연한 순서다”…둘로 쪼개진 사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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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24일 법원은 다시 쪼개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분노에 찬 규탄과 “당연한 순서다”라는 결연한 목소리가 판사들에게서 나왔다. 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에 정말 큰일이 났다”고 표현했다.

“미리 다 정해놓고 유죄 낙인 찍어” #“전직 수장이 책임져야 신뢰 회복” #“책임진다 했으면 구속 안됐을 것” #일각선 ‘김명수 책임론’ 제기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바라보는 시선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법원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검찰보다 중요시하는 데다 혐의가 구속 사유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 의혹을 비판한 판사들조차 영장 기각을 점쳤다.

그러나 구속 결과가 나오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비판적인 판사들은 “우리 스스로 법원의 신뢰를 던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이 문을 닫아야 한다”며 “업무 수행 중에 일어난 일이고 해석 여하에 따라 아직 달라질 부분이 많은데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한할 수 있는 구속 조치를 취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법 부장판사는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증거인멸’을 들었는데 대법원장의 인품을 그 정도로밖에 안 보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고법 부장판사는 “국민들은 구속 자체를 유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공방의 여지가 있음에도 구속한 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죄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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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요소가 개입된 결과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미 위에서 다 정해놓고 한 거 아니겠나”라며 “법원이 살 길을 찾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을 최후의 희생양으로 바친 것”이라고 말했다. 고법의 한 판사는 “이제 양승태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던 이석기(전 통진당 의원), 전교조, 민주노총 사건 관계자들이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부터 거기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판사들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특별재판부’ 카드를 꺼내들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데 이어 양 전 대법원장도 구속됐다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비판했던 판사들은 “정치적 의도로 해석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지법의 한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저지른 사안의 중대성을 떠나 사법부의 수장이 구속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더 걱정은 이번 구속이 정치적인 행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가 이번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을 ‘마무리 카드’로 택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법의 한 판사는 “결과적으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전직 수장이 책임지는 게 신뢰 회복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양 전 대법원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구속은 피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고위 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이 뒤로 빠져 있는 사이 임종헌 전 차장 등 다수의 자기 사람들이  ‘가지치기’되지 않았나”라며 “양 전 대법원장 스스로 자기를 지켜줄 사람들이 사라지도록 방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론’도 거론된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자기 손에 피 묻혔으면 김 대법원장도 이 사태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조직 내부 문제를 검찰 손을 빌려 처리한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무너진 신뢰를 세우는 데는 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대법원장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예상했다면 지나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후연·김기정·박사라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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