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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강성부 펀드와 손 잡나…심상찮은 한진칼 주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KCGI의 활동에 동참을 원하시는 한진칼, 한진 주주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KCGI가 개설한 ‘밸류 한진’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뜨는 문구다. 오는 3월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지 세력을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강성부 대표가 이끌어 일명 ‘강성부 펀드’라고 불리는 KCGI는 지난해 말 한진칼과 한진의 주식을 각각 10.81%, 8.03% 사들였고 2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KCGI는 지난 22일 한진그룹 측에 ▶지배구조위원회 설치 ▶독립적 임원추천위원회 운영 ▶적자 호텔 사업 정리 등을 공개 제안했다.

그러면서 범죄나 회사 평판을 실추시킨 행위를 저지른 임원 취임은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사건과 횡령ㆍ배임 혐의에 휘말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퇴진해야 한다는 요구나 마찬가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조 회장 일가와 ‘일전’을 선언한 KCGI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23일 열린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KCGI는 강력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23일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한진칼ㆍ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이사 해임, 대한항공 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 행사” 발언이 국민연금 내부 기류를 바꿔놓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강성부 펀드’의 손을 들어줄지, 말지에 대한 국민연금의 최종 결정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3월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치열한 표 대결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진칼은 2013년 만들어진 지주회사로 대한항공ㆍ한진ㆍ진에어ㆍ칼호텔네크워크 등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진칼 지배주주=한진그룹 지배주주’다. 대한항공보다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더 뜨거운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성부 펀드의 핵심 ‘타깃’도 한진칼이다.

강성부 KCGI 대표

강성부 KCGI 대표

한진칼의 1대 주주는 조 회장(보유 지분 17.7%)이다. 여기에 친족ㆍ재단 소유 주식까지 합친 조 회장 일가 지분은 28.7%다. 현 경영진 쪽에 표를 던질 것이 확실한 주주들이다.

국민연금이 KCGI와 의견을 같이한다면 반대 지분은 KCGI 10.81%, 국민연금 7.34% 합쳐 18.15%가 된다. KCGI가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더라도 조 회장 측과 비교해 10%포인트 넘게 지분 차이가 난다.

여기에 조 회장 쪽에 기운 우호 지분을 더하면 현 경영진 연임 찬성표가 40%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증권업계에선 3월 표 대결에서 국민연금이 힘을 실어주더라도 KCGI가 승리할 가능성을 작게 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연금 외 한진칼의 지분을 보유한 다른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KCGI 쪽으로 규합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미 기관투자가의 움직임은 심상찮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7년 12월 말 0.25%에 불과하던 증권회사의 한진칼 지분 보유량은 지난해 12월 말 5.77%로 급증했다.

이 기간 보험사의 한진칼 보유 지분도 0.07%에서 0.20%로 증가했다. 종합금융ㆍ금고 등 기타 금융사의 보유 지분율도 1년 사이 2.58%에서 4.08%로 배 가까이 늘었다.

KCGI에서 한진칼 2대 주주로 올랐다고 공시하고 주주권 행사를 하겠다고 밝힌 지난해 11월 16일 이후 기관투자가의 달라진 움직임은 다른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거래소 집계를 보면 지난해 KCGI 공시 이후 이달 22일까지 개인과 외국인은 한진칼 주식 681억원, 544억원을 각각 순매도했지만, 기관투자가는 1028억원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순매수).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 지분 차익 등을 염두에 둔 움직임으로 판단된다.

3월 표 대결에서 KCGI가 패배하더라도 현 한진 경영진을 위협할 만한 위치란 점을 확인받을 전망이다. 조 회장 측이 표 대결에서 이기더라도 일부 이사 교체, 사회적 책임 경영 강화 방안 마련 등 KCGI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외부 주주에 의한 경영진 교체가 드물지만, 선진국의 경우 그렇지 않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에 따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며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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