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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종」우려 출범은 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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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난국타개를 위해 구성된 여야 중진회의가 첫날 만만찮은 국정조사권 발동문제를 타결 짓고 18일엔 이번 회의의 첫 걸림돌로 등장한 공안 합수부 조기해체에 합의, 4개 분야 의제의 첫 의제인「주요현안」의 5개항을 일괄 타결지음으로써 순조로운 출범을 보여주고 있다.
여야가 저마다 「뜨거운」의제에 한발 짝씩 물러서면서 협상능력을 과시,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게 된 것은 절박한 필요성에서 탄생된 중진회의마저 현안에 대한 타결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정치실종」이라고 비아냥 받아온 정치권의 신뢰회복이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중진회의가 제1의제인 「주요현안」에서 부터 장애물에 걸려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이번 임시국회는 물론 앞으로의 정국이 파행을 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순항을 도와준 측면이다.

<일부현안 뒤로 미뤄>
그러나 이번 일괄타결이 여야 각 당이 편리한대로 해석을 달리해도 좋을 만큼 모호하고 포괄적인데다 일부 현안은 나중으로 미루는 식으로 처리, 발등의 불을 끄는 상태에서 절충됐다고 비판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해체시기 문제로 여야가 한때 대립했던 합수부의 경우 합의문을「최단 시일 내에 마무리짓는다」로 한 것이 그 예다. 합의문은「필요할 경우 검찰에 수사공조기구를 둘 수 있다」고 돼있어·당장「해체」냐,「개편」이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야당은 현존하는 합수부가 지금 다루고 있는 사건들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것인 만큼「해체」가 분명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반면 여당 측은 검찰에 별도의 공조기구를 둘 수 있고 이 기구에는 안기부요원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야당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낸 만큼「개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가 각기 체면은 살린 셈이다.
어쨌든 첫번째 중요난관이던 합수부 문제가 해결된 것은 평민·민주당 등 야당이『합수부 해체가 아니면 다른 현안도 합의할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나올 만큼 재야 측과의 관계나 여론의 압력이 큰데다 민정당이나 정부 역시「과잉강경」의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민정당 내부에선 내심 합수부의 사실상 주체인 안기부가 너무 전면에서 「활개」를 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합수부의 위력이 계속 유지될 경우 범 여권의 세력판도에서 온건그룹의 입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야당이 합수부의 해체를 제기하고 나선 점을 수용하려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폭력추방 한 목소리>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합수부가 좌경세력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전민련 등 재야세력을 위축시키는 등 5월 위기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으므로 여론의 반감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합수부의 존속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합수부 문제와 더불어 파괴 방지법을 이번 회기 안에 입법하기로 한 것과 반 폭력 결의문 채택에 합의한 것은 야당이 과거 존재자체를 부인하던 좌익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과 폭력추방에 한 목소리를 모았다는 점에서 제도권 정치의 시각일치를 확인하는 대목이다. 내각 총 사퇴 문제는 민정당이 일부장관의 경질을 적극적으로 시사하고 나섬에 따라 야당이 한발 후퇴, 쉽게 해결됐고 공화당의 체면용으로 인식돼온 신도시 건설문제의 경우 평민·민주당은 나중의 악법 개폐 작업에 공화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민정당은 국민관심사를 정치권에서 재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나쁠 게 없다는 판단에 따라 동의함으로써 현지 조사 후 재론으로 낙착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진회의의 전망이 계속 밝은 것만은 아니다. 다음 의제인 5공 청산의 경우「광주특별법」제정과 상무대 공원화문제는 쉽게 타결할 수 있으나 전두환·최규하씨 증언, 핵심인사 처리 등 어쩌면 합수부 해체문제보다 더 어려운 난코스가 남아있고 법령개폐에 있어서도 정치적 이해가 크게 걸린 지자제법개정은 물론 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좀처럼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걸림돌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민생문제」도 난제>
민정당이 전씨 증언에 있어 『생방송이 아니면 공개증언도 가능하다』는 전진적 자세를 보여 증언문제에 대해선 타결의 가망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핵심인사 처리방식이다. 민정당은 전씨 증언으로 광주의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핵심인사의 고발로 끝내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 특히 평민당은 전씨 증언에 앞서 정호용씨 등 핵심인사 처리문제가 해결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광주보상법 제정도 동의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자세여서 중진회의에서 처리할 가망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결국 영수회담에 넘기는 방향으로 유보하고 다음 의제인 법령개폐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법령개폐 협상에서는 야당 측이 현행 안기부법·국가보안법을 유지하는 것보다 점진적으로나마 일부 독소조항을 고치는 것이 실리 면에서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폐지」가 아닌「개정」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따라서 지자제법 등 4개재의 법안문제 등과 함께 일괄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민생문제」중에서는 난제가 농어가 부채부문이 될 것으로 예상되나 이 역시 평민당 측의 자세가 보다 유연한 쪽으로 흐르고 있어 타결전망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면 이번 중진회담에는 5공 청산 의제만을 제외한 나머지 현안들은 어떤 형태로든 절충해 현안의 부담을 크게 줄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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