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몸살 앓는 일 정국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리크루트 부정은 일본 보수정치를 위기로 몰아 넣었다. 이 사건에 관련된 「다케시타」(죽하등) 수상이 인책 사퇴할 뜻을 밝혔으나 후임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상 후보들도 모두 이 부정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34년간 집권해온 자민당의 도덕성과 정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리크루트 사건에 관련된 자민당간부는 13명이다. 그 중앤「나카소네」「다케시타」등 전·현직 수상과 「미야자와」대장상, 「아베」간사장,「 와타나베」정조회장 등 집권당의 중핵대부분이 들어 있다.
이들은 리크루트사로부터 거액의 정치헌금을 받거나 비공개 주식을 매입했다가 공개 후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다케시타」수상은 사임의사를 밝힌 뒤 스캔들에 관련되지 않은 유일한 당 간부인 「이토」(이동정의) 총무회장을 후임자로 교섭했으나 그는 끝내 수락치 않았다. 거부이유는 당뇨병으로 하루3∼4시간밖에 일할 수 없는 건강문제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토」가 내건 정치쇄신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지금의 일본정치 위기는 리크루트 부정 자체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구조에 있다. 일본 정치는 정권교체가 없는 상태에서 재계와 유착된 자민당의 파벌정치·금권정치에 의해 지탱 돼 왔다.
지금의 일본 정부는 자민당 5개 파벌의 세력 균형과 연합체제 위에 성립돼 이다. 각 파벌은 보스를 정점으로 한 엄격한 위계질서로 결합돼 있다. 이 같은 파벌 유지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그에 따른 정경유착은 일본 정치의 불가피한 정치 행태로 굳어졌다.
일본경제 단체연합회(경제연)는 매년 1백억엔(5백억원)의 정치자금을 내놓아 정부·여당의 최대 스폰서가 돼있다. 그 밖에도 많은 기업과 기업인이 별도로 정치헌금을 하고 있다.
「이토」가 수상취임 조건으로 부정관련 당 간부의 전원 퇴진과 파벌해체를 제시한 것은 일본 정치의 병폐를 이 기회에 고쳐야 한다는 데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노력은 재계 쪽에서도 일고있다. 혁신적인 중견기업인들로 구성된 경제 동지회가 중심이 되어 기업의 새로운 윤리확립, 그리고 정치와 연결된 기업교제비 사용의 자제를 내용으로 하는 자정선언이 나왔다.
우리는 일본정국이 오늘날 겪고있는 진통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지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를 포함하여 우리는 선거 때마다 금권정치의 타락한 모습을 보아왔다. 이번 동해 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일해 재단의 기금모금과정에 나타난 우리 정치의 병폐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야할 하나의 교훈은 일본 정치인들의 책임의식이다. 리크루트 스캔들은 불법이라기 보다는 도덕성의 문제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인들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데 주저치 않고 있다.
「다케시타」수상은 일본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키 위해 수상직과 의원직을 모두 내놓겠다고 했다.「나카소네」전 수상은 파벌의 회장직과 의원직을 사퇴하기로 했다. 그밖에 「아베」 「미야자와」와 부정관련 야당 대표들도 의원직을 사퇴할 모양이다.
이런 명쾌한 책임정치는 우리 정치풍토에 시사하는바 크다. 정치인은 국가·민족의 지도부를 구성한다. 그들의 투철한 책임의식이 없는 한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하기 어려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