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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곁으로 간 사장님…김택진 바텐더로, 한성숙은 방 옮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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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엔씨소프트 개발자 사내 행사서 #대표가 맥주 따라주며 고충 상담 #네이버 26층 사장실, 15층 이사 #고층·저층 직원 찾아오기 편해져 #판교밸리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직원들이 CEO 평가하는 곳도

사내 일일 주점인 ‘뭐든 물어bar’에서 바텐더로 변신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바텐더답게 앞치마까지 둘렀다. [사진 각 사]

사내 일일 주점인 ‘뭐든 물어bar’에서 바텐더로 변신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바텐더답게 앞치마까지 둘렀다. [사진 각 사]

지난해 11월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에는 간이 술집이 생겼다. 술집 이름은 ‘뭐든 물어 바(bar)’. 바텐더는 김택진(52) 엔씨소프트 대표였다. 일일 바텐더였던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수제맥주 등을 따라주면서 평소 사무실에서 말하기 힘들었던 고충을 상담해줬다.

‘뭐든 물어bar’는 엔씨소프트의 사내 개발자 콘퍼런스인 ‘NCDP(NC Developers Party) 2018’ 행사의 일부였다. 이틀 동안 열린 NCDP에서 김 대표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생각을 나눴고, 개발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건넸다. 직원들의 셀카 촬영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직원들은 “고용주가 아니라 개발자 선배이자 형·오빠 같았다”며 반겼다.

김 대표는 또 매 분기마다 열리는 ‘I&M(Innovation & Management) 리포트’ 행사에서 사내 방송 진행자로 변신한다. I&M은 엔씨소프트의 살림살이와 주요 현안 등을 설명하는 자리. 2014년 5월 시작된 이 행사는 초기엔 실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해 오다가 2016년 10월부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직원들 모두에게 회사에 대한 팩트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김 대표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 채팅으로 실시간 질문을 던지면 김 대표가 구두로 솔직히 대답한다는 점이다. 익명인 만큼 질문 내용엔 제한이 없다. 2017년엔 한 직원의 익명 건의로 전 직원들에게 닌텐도 게임기와 게임팩 등을 선물한 적도 있다. 당시 닌텐도 게임기 구입 등에 15억원 가량이 들었다.

판교밸리 기업들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수평적이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나올 것이란 믿음에서다. 대기업들도 위계 질서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판교밸리 기업에 이를 만큼은 아니다.

고층부와 저층부 양쪽에서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사옥 15층으로 사무실을 옮긴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무실도 화려한 장식 등을 배제하고 최대한 소탈하게 꾸몄다. [사진 각 사]

고층부와 저층부 양쪽에서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사옥 15층으로 사무실을 옮긴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무실도 화려한 장식 등을 배제하고 최대한 소탈하게 꾸몄다. [사진 각 사]

한성숙(52) 네이버 대표는 2017년 3월 취임 직후 집무실 위치를 바꿨다. 맨 꼭대기 바로 아래층인 26층에 있던 사장실을 15층으로 옮겼다. 27층 짜리 본사 건물에서 저층부 엘리베이터(8대)와 고층부 엘리베이터(6대)가 모두 운행하는 곳은 15·16층 뿐이다. 고층부에 있는 직원이든 저층부에 있는 직원이든 더 편하게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한 조치다. 과거엔 저층부에 있는 직원이 대표를 만나려면 15·1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했다.

한 대표는 또 외부 행사에서 스피치를 해야 할 때는 자신이 직접 원고를 작성한다. 대부분의 기업엔 스피치 라이팅을 전담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 수행 비서는 아예 없다. 세 명으로 구성된 사장 지원팀은 비서나 의전 업무보다는 자료 조사와 다른 직원과의 회의 일정 잡기 등을 주요 업무로 한다. 한 대표는 또 오전 9시면 출근하지만 지원팀 직원들은 각자의 스케쥴에 맞춰 자유로이 출근한다. 대표보다 먼저 나오는 것을 당연스레 생각하는 대기업과는 다른 모습이다.

인테리어 플랫폼 앱인 ‘오늘의 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 직원들이 회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이 최고경영자 근무성적을 평가한다. 제일 앞줄 왼쪽 셋째가 이승재 대표. [사진 각 사]

인테리어 플랫폼 앱인 ‘오늘의 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 직원들이 회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이 최고경영자 근무성적을 평가한다. 제일 앞줄 왼쪽 셋째가 이승재 대표. [사진 각 사]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의 근무 성적을 직원들이 평가하는 회사도 있다. 인테리어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인 ‘오늘의 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가 그렇다. 버킷플레이스의 이승재(32) 대표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6명의 직원들로부터 고과 평가를 받았다. 평가 항목은 ‘고객에 대한 집착’과 ‘자율과 책임’ 등. 잘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직원들이 느낀 대로 쓰는 것이었다. 이 대표의 평가자는 그와 업무 관련성이 높은 직원들로 구성됐다. 다른 직원들의 평가자도 동일한 방식으로 짜인다. 이 대표는 평가 결과만 통지 받을 뿐 누가 자신을 평가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김윤선 버킷플레이스 브랜드 매니저는 “직원들이 CEO와 관련해 평소 느끼는 아쉬운 점들을 지적하고 편안하게 개선을 요구하는 계기가 돼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판교밸리 기업들의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 노력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 다수다. 정광호 서울대 교수(개방형혁신학회 부회장)는 “수평적 조직 문화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성·수용성·관용성을 높여준다”며 “한국처럼 위계질서가 강한 문화에선 창의성이 발현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판교밸리 기업들의 노력은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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