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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라면도 함께... 일상을 같이 보내는 핸드볼 남북 단일팀

중앙일보

입력

16일 열린 세르비아와 세계핸드볼선수권 조별리그 경기에서 남북 단일팀 골키퍼 박재영과 북한 선수가 손을 마주 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16일 열린 세르비아와 세계핸드볼선수권 조별리그 경기에서 남북 단일팀 골키퍼 박재영과 북한 선수가 손을 마주 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저보다 한 살 어린 종건이가 너무 까불어요. 가만히 있는데 '탄이 형!' 하면서 찌르고 그래요. 하하"

남16-북4...세계선수권서 첫 결성 #장난 치고 농담 나눌 만큼 친해져 #"손발 맞춘 시간 짧아 아쉬워" 과제도 #

제26회 핸드볼 남자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선 남북 핸드볼 단일팀의 '남측 막내' 강탄(20·한국체대)은 팀 전체 막내인 북한의 박정건(19)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지난달 22일 단일팀 첫 훈련에 나이를 공개하면서 말 그대로 1살 차 동생이 생긴 강탄은 "이젠 서로 형, 동생 하면서 장난도 많이 치고 한 팀원이 됐다"고 말했다.

제26회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북 핸드볼 단일팀. [로이터=연합뉴스]

제26회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북 핸드볼 단일팀. [로이터=연합뉴스]

4주째 한 팀으로 있는 남북 핸드볼 단일팀은 올해 들어 전 종목을 통틀어 처음 결성된 남북 단일팀이다. 지난해 5월 국제핸드볼연맹(IHF)의 제안과 남북 체육회담을 통해 11월 말 전격 결성됐던 핸드볼 단일팀은 사상 처음이었다. 한국 선수 16명에 북한 선수 4명이 가세한 단일팀이었지만 실질적인 경기력 향상으로 이끌지는 미지수였다. 무엇보다 북한 핸드볼이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베일에 쌓여있었다. 북한은 이성진(30·예성강 지역팀), 이경성(22·용남산체육단), 이영명(21·관모봉 지역팀), 박정건(19·김책체육단) 등 상위권 팀의 최우수선수 위주로 선발했다.

그러나 경기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높았다. 조별리그 결과는 5전 전패였지만 세계 1위 독일, 4위 러시아, 5위 프랑스, 6위 세르비아 등 톱랭커 국가들과 만나는 일정 속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특히 16일 열린 세계 6위 세르비아와 대회 조별리그 4차전에선 29-31로 석패했다. 독일 키커는 "코리아가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킬 뻔 했다"고 전했을 정도였다.

지난 15일 열린 핸드볼 세계선수권 조별리그 프랑스전에서 공격을 성공한 뒤 환호하는 조영신 단일팀 감독과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 열린 핸드볼 세계선수권 조별리그 프랑스전에서 공격을 성공한 뒤 환호하는 조영신 단일팀 감독과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18일 단일팀 숙소가 있는 독일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만난 주장 정수영(33·SK호크스)은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강팀들과 좋은 경기를 한 것 같아 나름대로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차전 러시아전(27-34 패)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던 김동명(33·두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북측 선수들의 실력이 낮지 않다. 생각보다 빨리 친해졌고, 하루 이틀 지나서 족구를 하거나 공 갖고 놀면서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16일 열린 세르비아와 세계핸드볼선수권 조별리그 경기를 마친 뒤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남북 단일팀 핸드볼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16일 열린 세르비아와 세계핸드볼선수권 조별리그 경기를 마친 뒤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남북 단일팀 핸드볼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남북 단일팀 선수들은 방이 서로 나눠져 있는 것을 제외하곤 훈련, 이동, 식사, 식사 후 휴식 등 대부분의 일정을 함께 소화하고 있었다. 지난해 여자 아이스하키, 탁구, 여자 농구 등 훈련 때만 만났다가 헤어졌던 기존 남북 단일팀과는 달랐다. 정수영은 "휴식 시간에 북측 선수 두 명과 커피도 같이 마셨다. 같이 잘 어울리고 많이 웃는다"면서 "북측 선수들도 마음을 열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이제는 남북 따지지 않고 같은 팀이다"고 말했다. 김동명은 "즉석밥, 라면 등 우리가 싸온 걸 북측 선수들이 자신들이 먹던 것과 '맛이 비슷하다'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물론 기존 다른 종목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남북 간의 이질적인 용어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핸드볼을 북한에선 '송구'로 부른다. 김동명은 "포지션에서 센터백을 조직자, 레프트백을 좌내공격수, 레프트윙을 좌내측면수로 부른다. 또 피봇 플레이를 중앙 공격, 크로스 공격을 교차 공격이라고 하더라. 처음엔 '경성아 크로스해야지'할 때 갸우뚱했는데 지금은 '교차해야 돼'라고 얘기한다. 쉽게 풀어서 얘기하니까 언어적인 이질감은 없다"고 말했다.

사상 처음 결성된 남자 핸드볼 남북 단일팀. [연합뉴스]

사상 처음 결성된 남자 핸드볼 남북 단일팀. [연합뉴스]

단일팀은 순위 결정전 2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핸드볼에서 처음 경험한 남북 단일팀을 한국 선수들은 앞으로도 계속 경험할 수 있길 기대했다. 단 과제도 있었다. 역시 짧은 훈련 기간에 선수들은 아쉬움을 보였다. 김동명은 "우리 핸드볼계가 인프라가 작아서 선수 수급이 힘들다. 북한의 훌륭한 선수들과 같이 한다면, 좀 더 경기를 운영하는데도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경쟁력이 더 생길 수 있겠다"면서 "훈련 기간이 짧았다. 용어 정리 등 좀 더 시간이 길었다면 좀 더 완벽한 '원 팀'이 됐겠다"고 말했다. 강탄은 "함께 만나서 훈련한 시간이 짧았다. 그 때문에 경기 중에도 손발이 안 맞았던 부분이 있었다. 좀 더 연습 기간이 길다면 지금보다 나은 단일팀이 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베를린=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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