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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더해사는 변사|사인을 분석해 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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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3일오후 광주시청옥동 청풍교부근에서 택시를 타고가다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났던 청년이 이철규군으로 확인됨에 따라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이군의 사인을 실족추락사, 또는 타살후 유기로 심증을 굳혀가고 있다.
수사본부가 실족추락사를 유력하게 보는 이유는 이군이 산쪽으로 달아나자 경찰이 바로 뒤쫓아 갔으나 이군을 찾을수 없었으며 검문했던 다리부근에서 50여m 떨어진 제4수원지 관리사무소에 있던 청원경비경찰 이행민(50)·홍성하(31)씨등 2명이 다리쪽에서 『풍덩』하는 소리와 허우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동부검이 끝난후 참여의료진의 1차소견에서 『정황으로 봐 타살인 것갈으나 사망에 이르게한 직접적 외상은 발견할 수 없다. 익사 가능성은 적다』고 밝힘에 따라 수사본부는 실족추락후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가능성외에 또하나의 가능성, 부검에서 외견상 확인이 어려운 독극물등에 의한 피살후 유기가능성도 상정하고 있다.

<실족추락사>
가장 유력한 근거가 직접적 사인이 될만한 외상이 없다는 의사들의 1차소견과 제4수원지 청원경비경찰들이 현장부근에서 3일오후11시쯤 들었다는 소리등이다. 여기에 이군의 구두밑바닥이 묻은 수원지바닥의 흙(뻘흙)도 실족가능성을 더욱 짙게 해주는 요인.
그러나 실족사로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않다.
첫째, 검문을 피해 달아났던 이군은 분명히 다리쪽과는 반대방향인 산으로 뛰어갔고 경찰들도 뒤쫓아갔다. 이 사실은 택시운전사 이재민씨도 확인했다.
따라서 다리에서의 실족은 그만큼 가능성이 적어진다.
둘째, 이군이 달아났던 산쪽과 수원지 사이에는 2차선도로가 있고 도로옆 수원지쪽엔 1.8∼2.5m높이의 철조망이 쳐져있어 달아나던 이군이 수원지물로 떨어져 숨지기는 어렵다.
셋째, 청원경비경찰들이 들었다는 『풍덩』 소리와 헤엄치는듯한 소리도 들려온 방향이 다리쪼이라 했다.
이때문에 검찰과 경찰은 이군의 실족추락사를 가장 많이 점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이군이 달아났던 방향과는 정반대쪽이다.
그렇다면 이군은 뒤쫓던 경찰이 지키고있던 골목을 다시 빠져나와 뛰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경찰관 5명이 지키는 다리길목을 어떻게 통과할수 있느냐하는 의문점이 남는다.

<피살후 유기됐을 경우>
이군의 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수원지를 가로지른 청풍교하류쪽 1백여m 지점인데다 철조망이 둘러쳐진 물가였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커진다.
첫째, 이군이 달아났던 방향과 사체발견 지점이 철조망으로 차단돼 접근이 어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움직일수는 없고 살았을 때의 이군은 산으로 도망갔는데 어깨서 시체는 물가에 있었느냐는 의문에서 유기의 가능성을 점칠수 있다.
둘째, 의사들의 부검소견에서 위장과 폐에 물이 전혀 없었던 점에서 이군은 물에 빠져 숨졌을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따라서 물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면 사후 버려졌을 수밖에 없다.
셋째, 유기 가능성은 3일밤 청원경비경찰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풀래시를 동원해서 찾았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다음날에도 시체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1주일이후에야 발견된 점을 들수 있다.
이같은 의문점을 종합해보면 결국 이군은 피살후 유기됐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다.

<사망의 직접원인>
검찰과 경찰이 보는 가능성으로 독극물에 의한 것과 쇼크등에 의한 심장마비사등을 점친다.
그 이유로 『직접적 사망에 이를만한 외상을 발견할수 없다』는 소견서를 들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화학적인 정밀검사가 끝나야 알수 있다.
쇼크사에 의한 심장마비가능성으로는 역시 폐와 위장속에 물이 없었다는 점에서 유추할수 있다.
그러나 쇼크의 원인이 외부폭력이었는지, 아니면 이군의 신체적 상황이었는지는 역시 부검결과가 나와야 안다.
「5· 18」을 앞두고 예견치 못했던 사건의 돌발로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던 광주지검 관계자들은 11일낮 이군의 사체에 대한 부검이 끝난 뒤부터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
이는 이군 사체 발견 당시에는 얼굴과 목부위가 검게 변색돼 있고 왼쪽 눈알이 돌출돼 있는등 자연사로 보기 어려운 흔적이 있었으나 부검결과 후두부 함몰이나 뇌출혈등 구타한 것으로 보이는 상흔이 없다는 의료진의 소견이 나봤기 때문.
전남도경은 이군사건 직후인 11일 대전에서 출정식을 가진 「전대협」 학생1만여명의 광주방문을 앞두고 고심.
경찰은 『이군사건과 5·18경비로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 전대협이 광주에 와 5월투쟁정신 계승과 민중운동 탄압규탄 1차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니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
더구나 경찰은 『새 집시법에 따라 이들이 집회신고를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신고조차 없어 대책마련이 어렵다』고 실토.
경찰은 전대협소속 대학생들이 13일 오후2시 전남대에서 집회를 마친후 이군의 사체가 안치된 전남대법원으로 몰려가 과격시위를 하지 않을까 우려.
11일밤 조선대·전남대생 5백여명은 20∼30명씩 그룹별로 도청앞 광장등 시내 중심가에 모여 「강제연행·고문살인 합수부를 해체하라」는등 구호를 외치며 자정까지 평화시위.
학생들은 또 이군의 약력과 경찰에 의한 폭력살인을 주장하는 글이 실린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5· 18을 맞아 전시민이 노정권에 대항, 총궐기해줄 것을 호소.
이날 시위는 평화적인데다 소규모로 진행돼 경찰과의 충돌은 전무.
조선대총학생회는 11일 비상총회를 갖고 「애국학생 고이철규열사 고문살인규명 대책위준비위」를 구성, 「이열사 의문사에 대한 2만 민주조선인의 입장」이라는 공고문을 광주역·고속터미널등 시민 밀집지역에 부착, 대시민 홍보전에 돌입.
학생들은 공고문을 통해 『부검 결과를 종합해 볼때 이군의 죽음은 경찰의 폭력살인임이 틀림없다』고 주장, 시민들이 학생들의 폭력살인 규탄대회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호소.
학생들은 또 폭력살인 규탄의 일환으로 검은 리번 달기, 경찰에 항의전화하기등 4개항의 행동지침을 제시.
학생들은 이날 오후3시 전남도청앞 광장을 거쳐 조선대까지 가두시위.
학생·재야단체대표등으로 구성된 「고 이철규열사 고문살인 공동대책위」는 『3일오후10시 이군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태워다주었다』고 신고한 대광교통운전사 이재민씨 (33) 를 영안실에 보호하고 개별면담을 일체불허.
대책위는 운전사 이씨가 『4수원지청풍교에서 50대남자 3명이 검문하면서 이군에게 신분증제시를 요구하는 순간 이군이 창문을 열고 달아났다』고 설명.
대책위는 또 『20분쯤후 50대남자가 와서 우리는 경찰이다. 이군을 어디에서 태웠느냐』고 이씨에게 질문한 상황등으로 보아 『경찰관등이 이군을 쫓아 폭행해 죽였다』고 주장.
조선대교수협의회(의장 송준연) 는 11일 오전11시 이군의 사망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 『「민주조선」 편집장 이군이 끔찍한 모습의 변사체로 발견된데 대해 숱한 의혹을 감출수 없다』고 밝히고 『만일 현정부가 진상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킨다면 이는 바로 이군살해의 책임자가 곧 현정부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것』이라며 철저한 사인규명을 촉구.
이군의 시신이 안치된 광주시학동 전남대법원 영안실에는 부검이 끝난 11일 오후부터 이돈명조선대총장을 비롯, 시민·학생들의 조문행렬이 방새 줄을 이었으며 이날 조문객만도 1천여명에 이르렀다.
이군의 아버지 이정진씨(59) 와 어머니 황정자씨(54)는 이군 영정 앞에서 밤을 새우며 오열했고 형 인규씨 (31) 와 동생 명규군은 상주로 조문객을 맞느라 초췌한 모습.
분향소 주위는 김대중 평민당총재·김영삼 민주당총재를 비롯, 시민·학생들이 보낸 조화 1백여개가 늘어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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