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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사상으로 새질서 창출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부처님은 인연법을 말씀하였습니다. 동쪽기둥이 있어야 서쪽기둥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서로 인연으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사회의 어지러운 대립과 극단을 향해 치닫는 모습들은 함께 사는 이웃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불기2533년「부처님 오신날」을 사흘앞둔 9일 서울정릉 경국사에서 만난 동국대총장 이지관스님은『새로운 탄생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가「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깨달음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오늘 이땅에 부처님이 오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달이 아무리 밝아도 탁한 물에는 비쳐지지 않습니다. 밝은 진실이 있음을 증생이 깨달을 수 있게하기 위해 부처님은 고해에 내려와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십니다. 우리사회는 지금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가를 아는 부처님의 지견이 절실할 때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은 어떻게 접근해 갈 수 있습니까.
▲「간을 맞춰야 한다」고 말하고 싶군요. 음식이 먹기좋게 되었을 때「간이 맞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만사가 다 간이 맞아야 합니다.「간이 맞는다」는 것은 조화를 뜻하는 한자「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화롭게 놓여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사회의 쟁점으로 말한다면 보수와 혁신이 적절하게「간이 맞아」있으면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불교에서는「중도」라 표현하지요.
-각 분야에서 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삐걱거리는지 답답합니다.
▲회광반조하여 자기를 살펴보는 기회를 늘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향상되고 남도 화목하게 만들지요. 대학총장으로 학생들과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해보니 맞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기성인은 지켜야할 것이 많고, 또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나쁜 역관계 속에 있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느꼈습니다.
젊은이들이 앞장서고 또 시대가 바뀌어서 개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자기를 돌이켜보면서 잘못된 것은 스스로 과감히 비판해야 합니다.
-불교가 우리의 오랜 전통종교로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고 민중불교운동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불교의 위상정립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불교가 자각의 종교라고 해서 사회에 뛰어들어 보살행을 하는데 소홀한 감이 있습니다. 민중불교는 민중의 삶의 현실 속에 들어가자는 것으로 근본정신은 옳다고 봅니다. 종교는 원래가 개혁적인 것이며 잘못된 상태를 깨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중불교가 사회구성원을 계층으로 구분하고 한쪽이 한쪽을 부정하는 계급 투쟁적 입장에서 활동을 전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여기에도 중도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노사가 공정한 분배의 문제를 두고 대립되고 있습니다. 또 물질에 대한 추구의 도가 심하여 삶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보이기도 하는데요.
▲불교는 공의 사상을 말하고 있는데「공수래 공수거」라고 할 때 허무주의로 잘못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공의 사상은 버리고 버려서 알맹이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경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경제적 안정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용자나 근로자 모두 진실로 경계해야할 것은 물질만능의 풍조에 빠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검소하게 살아가면서 물질의 노예가 되는 상태는 과감히 버려나가야 합니다. 꼭 필요한 물질이 아닌 물질은「공」이라고 생각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통일문제는 역시 어렵군요. 가시화되는 듯하다가 또 멈칫하는 모양을 보이고…. 장기적이고 확고한 전망이 없는 것 같아요.
▲종교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양쪽이 다 바탕이 좀더 순수해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또 「마음을 비워라」고 말하고 싶군요. 순수한 바탕이 없이 경제를 앞세우고, 스포츠를 앞세우고, 또 문화예술을 앞세워 교류를 확대시킨다 한들 튼튼한 것이 못됩니다.
통일논의는 민족의 문제이니 만큼 큰 전망을 가지고 바른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동의대 사건에서 보듯 폭력에의 호소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구조적으로 만연된 폭력은 이제 분별을 잃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보여집니다. 폭력이 대화로 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마음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는 비폭력평화를 위한 노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만큼 종교인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교인의 한 사람으로 「자비로 포악을 대하라」는 말을 하고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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