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일반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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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시집이 잘 팔려 1백만부이상의 판매기록을 돌파한 밀리언셀러가 탄생할만큼 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근년에 와서 많이 달라지고 있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집출판은 초판 1천5백부수준에서 밑돌거나 시인 스스로 자비출판할 정도로 시는 이 사회에서 소외품목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수삼년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으며 30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올린 시집만도 4,5종은 된다. 겉으로 보기에도 시의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 문화예술의 꽃이라 할수 있는 시가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문화적 구심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이해하는 사회의 정신적 높이와 깊이의 성숙된 모습을 가긍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베스트셀러 시집의 출현은 소외받던 우리 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확산이라는 의미에서, 혹은 극히 한정되어 있던 시문학 풍토의 저변확충이라는 의미에서 우리 시의 활력소 구실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다.
그러나 잘 팔리는 이들 시집들이 우리 시문학사에 좋은 작품으로 기여하고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 문학적 성과가 무엇인가를 반문한다면 입을 닫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문학사적 설자리에서 엄격하게 이들 시집들에 대한 작품평가가 내려진다면 평가대상에조차 올려놓을 수 없는 궁색함을 느끼게 한다.
잘 팔리는 시집의 작품이 결코 좋은 시가 아니라는 등식을 떠나 생각해 볼수 있는 문제는 이들 베스트셀러 작품을 읽은 대다수 독자들의 우리 시문학에 대한 그릇된 인지도와 오도의 문제다.
우리 시문학이 그동안 쌓아온 두터운 시적 성과의 기층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베스트셀러 시집의 작품만을 읽음으로써 그것이 곧 우리 시의 한 단면을 대표하고 있다는 단순하고 그릇된 생각을 갖게된다. 뿐만아니라 시를 읽는 시각도 점점 그러한 시적 기호와 범주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굳어가고 있다.
최근 각 대학 캠퍼스의 낙서 시들을 모아 엮어낸 『슬픈 우리 젊은 날』이 새로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만으로도 그 영향권의 전이와 확산을 쉽게 엿볼 수 있다. 그것들은 젊은 시인들의 치열한 시정신과 각고의 실험정신에 의해 빚어지는 우리 시대의 해체시나 파괴시, 혹은 실험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시의 이름을 빌려 시의 격을 떨어뜨리는 이러한 시의 공해시대, 시에대한 부정적 시각마저 대중화해 가는 시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여, 너의 의미와 가치는 영원하며 어느시대의 문화적 훼절에도 변하지 않음을 우리는 굳게 믿는다. <시인 김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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