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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주둔으로 피해만 당해왔는데, 공원 조성도 안 된다니요”

중앙일보

입력

서울 도봉구와 맞닿아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아이러니하게도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인 이곳이 의정부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미군 주둔으로 인해 60여년간 각종 개발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요즘 호원동 주민들이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다. 미군 부대가 지난해 5월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마을 발전의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에 부풀었지만, 의정부시와 시민들이 마련한 문화예술공원 조성계획이 최근 국토부 심의에서 부결돼서다.

'캠프 잭슨' 주변 호원동 주민들 하소연 #국토부 “그린벨트 훼손 우려된다” #반환 기지 문화예술공원 사업 부결 #

지난 11일 오후 반환미군기지 ‘캠프 잭슨’ 정문 앞. 서울과 연결된 3번 국도(평화로)변에 있는 부대 안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고, 콘크리트 담장 사이로 철망이 쳐진 정문은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부대 안에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부대 뒤편으로는 도봉산의 수려한 산세가 펼쳐져 있다. 이곳은 미군이 부사관 양성 및 카투사 교육기관으로 사용했던 부대다.

상공에서 본 ‘캠프 잭슨’ 부지. [사진 의정부시]

상공에서 본 ‘캠프 잭슨’ 부지. [사진 의정부시]

이곳에서 만난 홍숙자(56·여) 호원1동 통장협의회장은 “지역주민들은 미군 부대가 들어온 뒤 60여년 동안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각종 개발규제를 받으면서 지역이 낙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 여기고 고통을 참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 부대 이전을 계기로 지역발전을 기대했는데 정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시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해 당황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캠프 잭슨은 1953년부터 미군이 사용하다 지난해 5월 평택으로 부대가 이전하면서 텅 비었다. 전체 164만㎡ 부지 가운데 도로와 접한 7만9800㎡ 부지에 숙소 등 52개 미군 시설이 설치됐었다. 국토부는 1971년 수도권 그린벨트를 지정하면서 이 일대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지난해 5월 미군이 떠난 의정부시 호원동 ‘캠프 잭슨’ 부지. 전익진 기자

지난해 5월 미군이 떠난 의정부시 호원동 ‘캠프 잭슨’ 부지. 전익진 기자

의정부시는 미군 부대 이전에 대비해 시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2016년부터 캠프 잭슨 부지에 대한 문화예술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했다. 전체 부지 가운데 건물과 도로 등으로 사용된 7만9800㎡을 활용하기로 했다. 시는 국방부로부터 이 땅을 사들인 뒤 국제아트센터 등을 갖춘 문화예술 공원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시는 52개 건물 중 38개를 철거해 녹지로 복원하고 나머지 14개 건물과 신축 건물 1개에 상설전시장을 조성할 구상이었다. 또 지하에 국제아트센터를 건립해 국제전시회, 미술대전 등 대규모 미술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의 계획은 최근 국토교통부 심의에서 부결되면서 추진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3일 회의를 열어 의정부시가 그린벨트에 추진한 문화예술공원 조성 계획을 최종적으로 부결했다. 위원회는 “지하 전시장과 주차장 등이 계획돼 그린벨트에 들어설 공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부결 이유를 설명했다.

‘캠프 잭슨’ 부지 문화예술공원 개발 조감도. [사진 의정부시]

‘캠프 잭슨’ 부지 문화예술공원 개발 조감도. [사진 의정부시]

이와 관련, 홍숙자 호원1동 통장협의회장은 “기존에 건물과 도로 등으로 훼손된 공간 중 대부분을 녹지로 복원해 문화예술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 어떻게 그린벨트 훼손에 해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항변했다.

홍춘복(59) 호원1동 주민자치위원장은 “미군 주둔으로 주택 개·보수도 어렵고 재산권 행사 피해까지 받으며 차별받은 지역에 문화·예술 공간이 조성되면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군사도시 이미지를 벗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무산돼 허탈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화 등을 목적으로 수도권과 대도시 주변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려 하면서 미군 주둔으로 낙후한 지역의 균형발전과 시민 복리 증진을 위해 이미 훼손된 그린벨트의 일부를 이용하겠다는 계획에 납득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의정부시도 반발하며 대책을 모색 중이다. 시는 문화예술공원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 추진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한미군 공여구역법과 개발제한구역법 관련 지침 개정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현범 의정부시 민자지원팀장은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에 따라 정책당국은 이미 훼손된 주한미군 공여구역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하거나 개발제한구역 내 시설 입지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캠프 잭슨 부지는 정부가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기 19년 이전인 1953년부터 미군 주둔지로 이용돼 이미 훼손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안병용 의정부시장. [사진 의정부시]

안병용 의정부시장. [사진 의정부시]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주한미군 공여지 개발사업을 가로막는 정부의 규제와 제한에 섭섭하다”며 “캠프 잭슨 문화예술공원(국제아트센터) 사업의 세부계획을 수정해 상반기 내로 다시 정부에 계획안을 제출하고, 경기도와 협의를 통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방안 등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의정부=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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