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4개 회사 이끈 '직업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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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제일화재 김우황(66)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 회사 CEO(최고경영자) 자리를 5년 5개월째 맡고 있다. 15일의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해 새롭게 3년의 임기를 새로 시작한다. 부침이 심한 손보업계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 8년 넘게 CEO로 재직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는 1984년부터 22년 동안 내셔널플라스틱, 호남식품, 우양공업 등 4개 기업 CEO로 일해왔다. 직업이 CE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01년 경영위기에 빠진 제일화재 대표로 취임해 회사를 회생시킨 '특급 소방수' 역할을 해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20일 한국경영사학회가 주는 '올해의 CEO 대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그가 생각하는 '장수 CEO 덕목'이 궁금했다.

그는 최우선 덕목으로 메모를 꼽았다.

"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수많은 보고를 받는 최고경영자로서는 메모가 습관화돼야 실수를 줄이고 창조적인 구상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의 수첩을 들쳐보니 빈칸 없이 그날그날 일어난 각종 상황과 아이디어가 아주 구체적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일화 한 토막. 1978년 사망자까지 냈던 대한항공기의 소련 무르만스크호 착륙 사건 때 그는 사고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내셔널 플라스틱 수출 담당이사였던 그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시간대 별로 꼼꼼히 기록했고, 이 기록은 귀국 후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 역시 CEO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어떤 조직이든 활력의 원천은 구성원에게서 나오는 만큼 이들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노력이 아주 중요하다."

직원들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경영에 반영하는 것도 CEO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67년 경희대 법대를 졸업한 뒤 제조업체에서 '영업맨'으로 일해왔다. 84년 내쇼널플라스틱 싱가포르 법인 대표가 되면서부터 직원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과감하게 수용했다. 2002년 제일화재가 국내 종합 손보사 최초로 온라인 자동차보험인 '아이퍼스트'와 '부부운전자 한정특약 상품'을 내놓아 성공한 것도 일선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덕분이었다.

김 부회장은 "오너는 전문경영인에게 일을 맡긴 이상 권한과 책임을 그에게 모두 줘야 회사가 잘 굴러갈 수 있다"면서 "CEO가 오너 눈치보는 데만 치중한다면 경영상황이 좋아지기 힘들고 자신도 장수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부하들로부터 덕장(德將)으로 평가받는 그이지만 2001년 취임 직후 32개 지점을 8개로 줄이는 매서운 모습도 보였다. 당시 회사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개선요구를 받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구조조정 당시에는 고통스러웠지만 1년 만에 금감원으로부터 경영개선 성공을 인정받아 정상화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글=윤창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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