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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외국 저질프로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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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의 시청률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욕 먹어도 좋다, 시청률만 오른다면"이라고 작심한 듯 보인다.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저질 시비에도 아랑곳 않고 무조건 틀어대는 기세다.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영화오락 전문채널 XTM의 개국은 이런 극한 저질경쟁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국내에 선보인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오락성이 한 수위 높은 수입 프로그램이 대거 방송되기 때문이다.

◇'끝까지 가는 거야'=XTM이 내건 이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게 XTM은 지금까지 국내 시청자가 경험하지 못한 각종 자극적인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저질 토크쇼로 악명을 떨치면서도 큰 인기를 누려온 '제리 스프링거 쇼'다.

제리 스프링거 쇼는 친한 친구에게도 차마 털어놓기 어려울 만큼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지닌 초대손님을 스튜디오로 불러내 결국은 욕설과 폭력이 오가는 난장판으로 끝장을 보는 프로그램이다. 한 예로 남자친구가 자신의 딸과 이중연애를 한다며 하소연하는 여자 초대손님 눈 앞에 딸과 문제의 상대남자를 데려온다.

안 그래도 눈에 불이 날 지경인데 사회자 제리 스프링거는 한 술 더 떠 주인공들을 부추긴다. 결과는 당연히 싸움판이다.

몇 년 전 출연자가 방송 중 다른 출연자를 권총으로 쏘는 사건까지 벌어졌던 문제의 토크쇼지만 시청자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도 시선을 놓지 않는다. XTM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XTM 이덕재 팀장은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 TV 역시 시청자의 기대수준에 많이 뒤져 있다"면서 "인터넷과 TV의 경계선 상에 놓인 프로그램을 제공함로써 인터넷을 통해 이미 수위가 높은 프로그램을 맛본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겠지만 그보다 이를 즐겨보는 층이 더 많을 것이란 계산이다.

◇저질로 치닫는 리얼리티=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의 사생활 엿보기 프로그램인 리얼리티 쇼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저질 논란을 일으켰던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물불 안 가리고 다른 커플의 파트너를 뺏는 게임인 '템프테이션 아일랜드'(리빙 TV)와 '러브 서바이벌'(동아 TV)이 방송 중이고, 불륜현장을 덮치는 '현장고발! 치터스'(Q채널)는 30일부터 방송된다.

XTM이 준비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여기서 한 발, 아니 두 발 더 나간다. 유명 스타들을 쫓아다니는 파파라치의 취재기를 공개하는 '스타 파파라치'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운 편.

쥐를 가득 담은 커다란 상자 속에 들어가 오래 버티기 같은 상상도 못한 극한 상황을 견디면 상금을 주는 '도전! 미션 임파서블', 평범한 사람의 하루를 계획적으로 망치고 그 반응을 살피는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 '리얼리티 쇼! 오 마이 갓!', 그리고 그 유명한 '빅 브라더'가 기다리고 있다.

Q채널 관계자는 '현장고발! 치터스'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이라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시청률을 끌어올려서 다른 좋은 프로그램으로 유인하려는 기대에서 편성한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너도 나도 돈 되는 프로그램만 틀다보니 채널간 차별성도 떨어지고 벌써부터 수입 가격 상승이라는 역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프로그램, 나쁜 프로그램을 가리기에 앞서 일단 케이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케이블 채널들의 전략이 과연 얼마나 먹힐지 두고 볼 일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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