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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⑱우리카드 신영철의 디테일 배구

중앙일보

입력

12월 31일 삼성화재전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 양광삼 기자

12월 31일 삼성화재전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 양광삼 기자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은 '디테일'이 강한 지도자다. 경기 전후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처럼 기술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감독은 흔치 않다. 배구를 직접 해지 못한 기자들을 상대로도 전술적인 움직임이나 선수 기용에 대한 이유를 상세히 풀어주곤 한다. 선수를 '가르칠' 때도 신 감독은 세밀하다. 미들블로커에겐 손 모양, 날개공격수에겐 스텝 숫자까지 일러준다. 세터 출신답게 세터들에겐 더 세밀하다. 프로배구 최고 세터로 활약했던 유광우조차 신 감독의 시범을 보고 감탄했다.

올 시즌 우리카드에 대한 전망은 어두운 편이었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1순위로 리버맨 아가메즈를 뽑았음에도 말이다. 지난시즌 활약했던 크리스티안 파다르보다 공격기술을 뛰어나지만 체력적인 부분에 물음표가 달렸다. 사실 더 큰 걱정은 '성격'이었다. 아가메즈는 2013-14시즌 현대캐피탈에서 뛸 때부터 승부욕이 강해 짜증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우리카드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변우덕 우리카드 사무국장은 "당연히 그 문제는 알았고, 우려도 했다. 트라이아웃에서 보는 순간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워낙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우리카드 아가메즈가 신영철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아가메즈는 "신영철 감독은 내가 만난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세 명 중 하나다"라고 했다. [사진 KOVO]

우리카드 아가메즈가 신영철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아가메즈는 "신영철 감독은 내가 만난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세 명 중 하나다"라고 했다. [사진 KOVO]

신 감독도 당연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여러 차례 충돌도 일어났다. 신 감독의 강한 훈련 방식에 아가메즈가 불만을 표하면서 '조퇴'를 하기도 했다. 네맥 마틴 코치가 아가메즈를 전담하다시피 달래기도 하고, 맞서기도 했다. 신 감독은 아가메즈의 마음을 달랬다. 마틴 코치의 아내를 통해 아가메즈의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육아를 비롯한 한국 생활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그러면서도 "네 승부욕은 인정하지만 긍정적으로 표출하라"고 강하게 맞섰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우리카드는 3라운드부터 상승세를 달리며 2018년을 3위로 마쳤다.

아가메즈가 버티는 라이트와 달리 레프트 포지션은 우리카드의 약점이다. 최홍석, 신으뜸이 트레이드로 떠난 뒤 나경복-한성정-황경민 등 젊은 선수들이 빈 자리를 차지했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세 선수는 기복이 있다. 경기 중에도 잦은 교체를 통해 변화를 줄 수 밖에 없다. 신 감독에게 '공격과 수비, 어느 쪽에 교체 포인트를 두냐'고 물었다.

"리듬이다. 경기 중 움직임들을 보고 선수들을 파악한다. 연습 때나 경기 때나 늘 선수들을 보기 때문에 선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안다." 신 감독은 "이를테면 공격을 할 때 어깨가 먼저 열린다든지, 서브를 넣을 때 움직임이 달라질 때가 있다. 그런 걸 보고 교체를 한다"고 했다.

우리카드 나경복

우리카드 나경복

12월 31일 삼성화재전에서도 그랬다. 신 감독은 이날 삼성화재 주포 타이스를 흔들기 위해 서브가 좋은 나경복과 한성정을 선발로 투입했다. 하지만 나경복은 1세트에 다소 좋지 않았다. 공격과 리시브에서 흔들렸다. 그럼에도 신 감독은 나경복을 빼지 않았다. 서브를 넣을 때 움직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경복은 서브를 넣고 항상 신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나경복은 17개의 서브를 때려 범실 없이 3개의 에이스를 기록했다. 삼성화재 타이스는 결국 리시브 불안 때문에 2세트 이후 코트에 들어서지 못했고, 승리는 우리카드에게 돌아갔다.

우리카드에서 올 시즌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선수는 미들블로커 김시훈이다. 김시훈은 2009년 우리카드의 전신인 우리캐피탈에 1라운드 4순위로 입단해 10년차다. 그동안 김시훈의 자리는 '웜업존'이었다. 신영석(현대캐피탈), 박상하(삼성화재), 박진우(상무) 등 쟁쟁한 센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주전으로 도약했다. 삼성화재전에선 데뷔 후 한 경기 최다인 12득점을 올렸다. 9년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수훈인터뷰를 올시즌엔 두 번이나 했다.

우리카드 미들블로커 김시훈. 양광삼 기자

우리카드 미들블로커 김시훈. 양광삼 기자

김시훈은 "우리 팀에서 내가 제일 부족하다. 인터뷰를 하는 것도 창피하다"고 쑥스러워했다. 냉정하게 보면 김시훈은 'A급' 선수는 아니다. 블로킹이나 속공은 리그 평균 정도다. 하지만 신 감독은 김시훈에게서 두 가지를 봤다. 안정된 서브와 '승부욕'이었다. 김시훈은 "솔직히 예전엔 주전 경쟁이 힘들어서 배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이 오시면서 많이 용기를 주셨다. 내가 잘 하는 건 '파이팅'이다. 베테랑으로서 더 소리지르고 움직이려고 한다"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신영철 감독은 김시훈의 생각을 바꿨고, 김시훈은 우리카드 센터진을 바꿨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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