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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과 마트 사이…‘동네 수퍼’ 다시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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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시골 동네 수퍼마켓 전경. [중앙포토]

시골 동네 수퍼마켓 전경. [중앙포토]

자취생 성시훈(30·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씨는 동네 수퍼 단골손님이다. 편의점에서는 찾기 힘든 뻥튀기류의 옛날 과자가 먹고 싶을 때, 갑자기 변기가 막혀 뚫어 뻥이 필요한 위급 순간에도 동네 수퍼를 찾는다. 성씨는 “날이 좋을 때 수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어르신들에게 동네 돌아가는 소식도 들을 수 있는 것도 동네 수퍼의 장점”이라며 “편의점처럼 정해놓은 테마가 없이, 자주 쓰는 생필품을 모아 놓은 것도 동네 수퍼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했다.

남산 보마켓, 매장 일부 카페 활용 #라면·샌드위치 끼니거리도 팔아 #롯데슈퍼는 활어 푸드마켓 운영 #젊은층 상권선 과일·간식류 늘려 #헬스&뷰티 전문 매장도 확산

‘우리 동네 터줏대감’, 동네 수퍼가 변신하고 있다. 동네 수퍼의 변화는 생존 때문이다. 편의점과 대형마트 사이에서, 또 온라인 쇼핑 확대로 동네 수퍼는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통계청의 ‘소매판매액지수’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수퍼마켓 시장의 연평균 매출증가율(CAGR)은 12.7%로 고속 성장을 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스마트폰 사용자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온라인 쇼핑이 확대되고 있으며, 대형 마트와 편의점이 골목 상권을 위협하면서 2012년 이후 매출증가율은 급격히 둔화하는 추세다. 중소벤처기업부 조사에서도 편의점 점포는 2011년 2만1879개에서 2017년 3만 9844개를 기록하는 등 6년간 1만8000개가 증가했지만, 동네 수퍼는 2011년 7만 6043개에서 2016년 5만 9736개로 1만 6000개가량 줄었다. 사라진 동네 수퍼의 빈자리를 편의점이 메웠다는 의미다.

예쁘게 디자인된 동네 수퍼. [사진 채원상 , 이동미 여행작가]

예쁘게 디자인된 동네 수퍼. [사진 채원상 , 이동미 여행작가]

위기 속 수퍼들은 각 동네 사정에 맞는 상품 구성과 지역 주민들과의 높은 친밀도를 앞세워 편의점 등과 경쟁에 나섰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 사는 김보라(24)씨는 동네 수퍼를 자주 애용한다. 과일이나 고기와 같은 신선식품의 품질이 대형 마트와 비교했을 때 떨어지지 않아서다. 김 씨는 “공산품을 구매할 땐 대형마트를 찾지만 아무래도 식료품 구매 빈도가 높아 동네 수퍼를 더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김태훈(28·경기도 광명시)씨는 “집에서 3분 거리라는 장점에 더해 아파트 규격에 맞는 형광등이나 전구를 구비해둔 것이 동네 수퍼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주부 박미경(46·성남시 분당구)씨는 “복잡한 쇼핑몰의 경우 차량 이동이나 주차 문제와 같은 시간 소비가 많아 잘 이용하지 않는다”라며 “우리 집 같은 2인 가족의 경우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를 구매할 수 있고 음식물쓰레기 등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동네 수퍼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 소월로 남산 맨션 1층에 있는 보마켓 내부. [중앙포토]

서울 소월로 남산 맨션 1층에 있는 보마켓 내부. [중앙포토]

이런 최신 트렌드에 맞춘 ‘힙’한 동네 수퍼도 등장했다. 서울 소월로 남산맨션 1층엔 ‘보마켓(bomarket)이란 미니 수퍼가 대표적이다. 2014년 문을 연 이 수퍼는 “하나를 사더라도 취향을 겨냥한 물건을 팔자”는 콘셉트로 식료품은 물론 일본 동전 파스나 마비스 치약과 같은 각국 대표 생필품으로 채워져 있다. 또 수퍼 외 공간은 카페로 꾸며 샌드위치와 라면 등 간단한 먹거리를 팔면서 SNS에서 화제가 됐다.

동네 수퍼 살리기엔 정부도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4월부터 골목 수퍼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동네 수퍼협업화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대기업 편의점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한 사업으로 지역 수퍼조합이 중심이 돼서 점포 경영지도는 물론 필요한 상품을 공동구매해 배송하고, 필요한 경우 공동으로 점포 환경 개선 지원도 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지원과 송성동 사무관은 “2018년에 10개 수퍼조합을 지원하고 있는데 첫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며 “컨설팅업체 분석을 통해 실제 조합에 가서 지역 상황에 맞게 수퍼를 어떻게 운영할지 방향을 잡아주기도 했다. 편차는 있고 갈 길은 멀지만, 해당 업소의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뒀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시흥에 문을 연 하이브리드 매장인 롯데슈퍼 with 롭스 1호점. [사진 롯데슈퍼]

지난해 7월 경기도 시흥에 문을 연 하이브리드 매장인 롯데슈퍼 with 롭스 1호점. [사진 롯데슈퍼]

대기업 수퍼마켓도 생존 경쟁에서 예외는 아니다. ‘우리 동네만의 특별한 수퍼마켓’을 모토로 지역 고객의 특성에 맞춘 매장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전국 460여 개 매장이 있는 롯데슈퍼는 8곳의 프리미엄 푸드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구성 상품의 40%를 산지에서 직송한 활어와 같은 신선식품으로 채운 것이 특징이다.

19개의 ‘뉴 콘셉트’ 매장도 있다. 뉴 콘셉트 1호점인 ‘G 은평점’은 상권 내 신혼 가구와 영유아 및 초등학생 자녀 가구 구성비가 49%인 것에 맞춰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신선식품 구성을 타 매장대비 30% 늘렸고, 이유식 재료와 같은 기능성 소포장 상품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경기 용인 수지점은 중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 전체 고객의 30%인 것에 착안해 스낵과 초콜릿 등 간식 대체 상품 비중을 타 매장 대비 20% 늘리고 피자나 스파게티와 같은 간식용 냉동식품 상품군을 15% 늘려 진열했다. 성인 자녀 가정 및 노년층 가구 비중이 고객 절반(52%)을 넘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점은 대용량 상품을 구비하고 매장 내 프랜차이즈 식품 업체를 둬 소비자 편의에 중점을 두기도 했다.

또 H&B(헬스&뷰티) 전문매장인 롭스와 수퍼를 결합(시흥은행점·원주점)해 기존 40~50대 고객에서 20~30대까지 고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강종현 롯데슈퍼 대표는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해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며 “가성비나 가심비와 같이 세분화 되고 있는 고객의 니즈를 제때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특화 매장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곽재민·김정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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