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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사태 돌아보기] 6급 수사관은 어떻게 임종석·조국마저 국회 세웠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을 통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이 전 특감반장은 최근 ‘비위 의혹’으로 검찰에 복귀한 김태우 수사관의 직속상관이다. [중앙포토, 뉴스1]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을 통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이 전 특감반장은 최근 ‘비위 의혹’으로 검찰에 복귀한 김태우 수사관의 직속상관이다. [중앙포토, 뉴스1]

일반인에게 검찰 수사관이란 존재는 낯설다. 검찰 수사관은 9급 또는 7급으로 입직한 공무원이지만, 대개 검사들의 조력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검찰이란 조직 자체가 엘리트 검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까닭에 수사관은 철저한 조연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김태우 수사관은 이례적인 존재다. 일개 6급 검찰 수사관이 권력이 아직 중천(中天)에 걸려있는 문재인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2018년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는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다. 김 수사관의 연이은 폭로와 이를 둘러싼 여야의 드잡이질로 임시국회의 법안 처리조차 막힐 지경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수석에게 “국회에 나가시라”고 얘기했다.

2018년 정국을 격랑에 몰아넣은 ‘김태우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나비효과일까, 아니면 청와대 내부적으로 곪아 가던 상처가 터진 걸까. 전말을 되짚어봤다.

◇출발점은 조국 수석의 물갈이

지난달 28일 김 수사관이 청와대 감찰을 받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에서 일하던 김 수사관은 11월 초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한 직원이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에게 “김 수사관이 자신의 지인이 연루된 경찰 사건을 묻는데, 청와대 특감반원이 맞느냐”고 문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민정수석실 조사 과정에서 김 수사관은 ‘특감반 동료들과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신 사실 등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며 반발했고, 조국 수석은 이를 ‘겁박’이라고 판단해 특감반원 전체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이때만 해도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직원들의 일탈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은 권력형 범죄 수준에 이른다”(나경원 원내대표)고 비판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일부의 비위 의혹에 특감반을 통째로 물갈이했는데 칭찬은 못 할망정 조 수석에게 물러나라는 건 어불성설”(이석현 의원)이라고 맞서는 정도였다.

◇김태우의 되치기

곧이어 검찰로 돌아간 김 수사관의 반격이 시작됐다. 김 수사관은 언론에 “청와대가 나를 감찰하는 이유는 이 정부의 실세 출신 공직자들에 대한 첩보를 많이 생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러시아로 출국하고 있는 우윤근 주러시아대사. 뉴스1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러시아로 출국하고 있는 우윤근 주러시아대사. 뉴스1

그러면서 등장한 인물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다. 김 수사관이 생산한 첩보에는 “2009년 장모씨가 청탁과 함께 우 대사에게 1000만원을 줬다가 (총선이 있던) 2016년 돌려받았다”,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변호사 A씨에게 수사 무마 명목으로 1억2000만원을 건넸고 1억원은 우 대사가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 대사는 “장씨를 만난 적은 있지만, 취업 청탁은 물론 후원금 등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수사관은 언론에 보낸 ‘기자회견문 초안’에서 “우윤근 건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보고한 첩보 중 (청와대에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처리한 것이 여러 건 있다”고 밝혔다.

◇미꾸라지와 DNA

청와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자극적이었다. 국민소통수석과 대변인의 실명 코멘트로는 드물게 청와대의 감정이 잔뜩 묻어나오는 표현까지 동원돼 김 수사관을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고 있다. 곧 불순물은 가라앉고 진실은 명료해질 것이다.” (12월 15일,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문재인 정부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12월 18일, 김의겸 대변인)

◇김태우는 ‘적폐’가 아니었나 

여권에선 김 수사관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도 근무할 수 있었던 배경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김 수사관 스스로 “나만 청와대에 세 번째 파견 나온 것이고 나머지 특감반원 7명은 청와대 근무가 초짜였다”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도 강했다.

이와 관련해 대검 감찰본부는 김 수사관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건설업자 최모씨를 통해 “청와대 특감반에 파견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인사 청탁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감찰 본부는 “구체적인 물증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씨의 신원이나 실제 실력 행사 여부에 대해선 “민간인이라 감찰 범위 밖의 일이다.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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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한국당이 ‘김태우 논란’에 뛰어들면서 사건의 양상은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공방으로 번졌다. 한국당은 19일 의원총회에서 김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문건 목록을 공개했다. 여기엔 친박계 핵심 인물인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치인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민간인에 대한 보고서 파일 목록이 있었다.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번진 직접적 계기다.

26일엔 특감반 의혹 진상조사단을 이끄는 김용남 전 의원이 한국환경공단ㆍ국립공원관리공단 등 환경부 산하 8개 공공기관 임원 24명의 사퇴 현황이 담겨 있는 문건을 공개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확전됐다. 문건에는 ‘한국환경공단 외에는 특별한 동요나 반발 없이 사퇴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 전 의원은 “환경부가 올해 1월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 인사 개입 의도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라며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시했다.

‘특별감찰반 의혹’ 청와대-김태우 수사관 입장. [연합뉴스]

‘특별감찰반 의혹’ 청와대-김태우 수사관 입장. [연합뉴스]

◇31일, 2018년 마지막을 달굴 국회 운영위

자체 감찰에 따른 청와대 민정수석 특별감찰반원 전원 교체는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번졌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31일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불러 관련 사항을 따질 계획이다. 민주당은 “인사 정보 문건이 나왔다고 무조건 블랙리스트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한국당은 “상부의 지시 없이 6급 수사관 혼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은 현 여권이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 성격’을 비판할 때 가장 흔히 거론되던 사례다. 그랬던 문재인 정부가 거꾸로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공격을 받는 건 역설적인 상황이다. 다만 청와대는 “문제의 환경부 문건은 김 수사관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지 상부에 체계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권 차원의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김 수사관 개인의 일탈행동이란 것이다. 야권은 조국 수석을 상대로 진상을 밝히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정치권의 시선은 2018년 마지막 날 열리는 국회 운영위로 쏠리고 있다.

권호ㆍ성지원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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