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 이끌었던 반도체…이젠 경기둔화 이끄는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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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투자 지표가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와 미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및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반년 이상 동반 하락하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생산의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산업생산이 삐거덕대면서 경기침체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통계청은 28일 이같은 내용의 ‘산업활동동향’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 생산은 10월보다 0.7% 줄었다. '광공업 생산'은 반도체(-5.2%)와 통신·방송장비(-14.4%)가 하락세를 주도해 전달보다 1.7% 줄었다. 서비스업도 금융ㆍ보험(-3.5%), 부동산(-3.5%) 등이 부진해 전달보다 0.2% 줄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산업생산은 8월 증가(0.4%), 9월 감소(-1.4%), 10월 증가(0.8%), 11월 감소 등으로 매월 플러스·마이너스를 오가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의 흐름이 심상찮다. 전달과 비교한 반도체 생산은 지난 8∼9월 감소한 뒤 10월 반짝 증가했다가 지난달 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주문형 생산이 중심인 반도체의 지난달 출하지수가 전월보다 16.3%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에 18% 감소한 후 9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반도체 생산 부진의 주된 원인으로는 가격 하락이 꼽힌다. 지난달 D램 반도체 수출물가는 전달보다 2% 떨어지면서 올해 8월(-0.1%) 이후 하락세를 이어갔다. D램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주력 상품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생산, 출하 지표가 악화하면 수출이 영향을 받게 된다"며 "반도체 수출이 한국의 수출을 이끌었는데, 전체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설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제조업의 또 다른 한 축인 통신·방송장비 제조업도 고전하고 있다. 삼성·LG 등에서 선보인 스마트폰 신제품 판매가 부진하고, 이에 따라 휴대폰용 카메라모듈 등 관련 부품 제조업도 동반 부진을 겪는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제는 이런 제조업의 둔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제조업 경기는 기업들이 설비에 얼마나 투자하느냐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향후 제품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설비 투자를 줄인다.

그런데 지난달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5.1% 감소했다. 올해 6월 7.1% 줄어든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지난 3월부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설비투자는 9월과 10월 두 달 연속 증가세를 보였으나, 다시 감소세로 전환했다. 대규모 반도체 설비 등 대기업의 투자가 마무리된 영향이다.

경기는 사실상 둔화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2로 11월 전월보다 0.2포인트 하락하며 8개월 연속 내렸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98.6으로 0.2포인트 내리며 6개월째 뒷걸음질이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적을수록 경기가 부진하다는 뜻이다. 동행·선행 순환변동치가 6개월 이상 동반 하락한 것은 2004년 5월~10월까지 이후 14년 만이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통상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 대비 6개월 이상 하락하면 경기가 상승에서 하강으로 꺾이는 전환점을 맞은 것으로 잠정적으로 판단한다. 통계청은 두 지수 순환변동치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경기 전환점 설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강신욱 통계청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2분기 언저리가 경기정점으로 추정된다"며 "이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절차를 거쳐 공식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그러나 이것만으로 하강국면 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국내총생산(GDP) 확정자료가 나오는 내년 3월 이후 각계 전문가 의견 물은 후 잠정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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