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변화로"민정정착"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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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루과이 국민들은 16일 국민투표에서 고민스런 선택을 해야만 했다.
지난 군정 기간(73∼85년)중의 인권유린 책임자들이 면책받을 수 있게 한 사면법의 폐지 여부를 놓고 가부를 대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군부의 반발을 무릅쓰고「군정 잔재 청산」을 하느냐, 아니면 12년 군정 끝에 성취한 신생 민간정부를 수호하느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함으로써「홀리오·상기네티」대통령정부는 84년 집권이후 최대의 정치적 시련을 승리로 이끈 셈이 됐다.
그러나 「상기네티」에게는 40%에 달하는 사면법 철폐 여론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새로운 과제로 안겨졌다.
이번 투표결과는 남미 국가에 일반화되다시피 한「군부와의 타협」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민주 정부에 대한 우루과이 국민들의 애착과 자존심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정 이전까지 수십년간의 민주정부를 이끌어 오면서 교육수준·국민소득·사회복지면에서 남미1등 국가로 인식되어온 우루과이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도 또다시 군부에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현정부의「현상유지」노력이 어필했다.
우루과이의 군부가 정치에 간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3년. 72년 출범한 「후안·보르다베리」대통령 정부가 좌익도시 게릴라의 준동으로 위기에 직면하자 군부는 이의 소탕을 빌미로 정치에 개입했다.
군부는 이 과정에서 사회안정을 이룩하긴 했지만 고문·납치·살인 등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우루과이 판「추이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85년 민정 이양후「상기네티」대통령은 도시게릴라 석방, 공산당의 합리화, 해직 공무원의 복직 등 화합조치를 취했으나 군정 인권범죄 책임자에 대한민간 법원의 사법처리 움직임은 곧 군부의 거센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벽에 부닥쳤던 것이다.
이에「상기네티」정부는 비타협적이던 제1야당 블랑코당을 설득해 86년 사면법을 통과시키자 재야 및 인권단체들이 이에 반발, 사면법 폐지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한 결과 유권자 25%의 서명을 받아 냄으로써 국민투표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이번 투표에 이르기까지「상기네티」정부가「안정과 화합」의 명분을 내세우며 현상유지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애당초 군부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민정이양이 이루어진 구조적인 한계점도 있었지만 주변국가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알폰신」대통령정부는 83년 민정 출범 후 군정 책임자에 대한 과감한 사법처리를 단행,「비델라」,「비올라」등 군정 대통령을 포함한 수십명을 처벌했다.
그러나「알폰신」은 집권 이후 군정 책임자 처벌에 반대하는 군부반란을 3차례나 겪으면서도 그 주동자를 석방하는 등 한계성을 보여주었다.
인접 브라질에서도 민간「사르네이」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기는 마찬가지. 지난해 10월 신 헌법을 통해 군부의 지위를 강화해 주어야만 했다.
이번 우루과이의 투표결과는 남미의 신생 민간정부가 구조적으로 군부와 타협해야 하는 속성의 일면을 드러내고 말았지만 향후 민간정부의 정국 주도력과 민주화의지에 따라 새로운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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