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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찾는 경단녀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4)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서둘러 집으로 향하던 중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었다.
“성동구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토크 콘서트 ‘고마워요! 힘을 내요!’”

옥수종합사회복지관이 주관하고, 성동구와 ㈜티브로드가 후원한 ‘고마워요! 힘을 내요!’ 토크 콘서트 행사. [사진 제공 성동구청]

옥수종합사회복지관이 주관하고, 성동구와 ㈜티브로드가 후원한 ‘고마워요! 힘을 내요!’ 토크 콘서트 행사. [사진 제공 성동구청]

회사에 다닐 때는 기사로만 접해왔던 경력단절의 생활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 더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저 자리에 참석하면 어떤 여성들을 만날 수 있을까? 모여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걸까?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지자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가 어떤 내용의 행사일지 궁금했다.

통계청의 ‘2018년 상반기 경력단절 여성 현황’ 발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15~54세 기혼 여성 가운데 경력단절 여성은 184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5000명이 늘었으며, 비중은 20.5%로 1년 전보다 0.5% 포인트 상승했다. 2015년 21.7%, 2016년 20.5%, 지난해 20.0%로 계속 떨어지다가 올해 다시 올라간 것이다.

통계청은 재취업이 어려워진 것이 경력단절 여성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는데, 전체 취업자 수가 기본적으로 감소했고 경력단절 여성들이 취업해왔던 시간제 일자리 역시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덧붙였다. 경력단절의 이유로는 결혼이 34.4%로 가장 높았고, 육아(33.5%)와 임신·출산(24.1%)이 그다음 순이다.

연령은 30∼39세가 88만6000명(48.0%)으로 가장 많고, 40∼49세가 66만명(35.8%), 50∼54세는 16만1000명(·8.7%), 15∼29세는 13만9000명(7.5%) 순으로 나타났다. 경력단절 기간을 보면 10∼20년 미만이 25.5%, 5∼10년 미만은 24.7%, 3∼5년 미만 15.0%, 1∼3년 미만 13.2%, 20년 이상 11.1%, 1년 미만 10.6%이다.

이 조사에서 대상으로 삼은 경력단절 여성은 ‘비취업 여성 중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자녀교육(초등학생), 가족 돌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다. 기사를 읽으며 ‘나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 퇴사한 게 아니라 통계청이 말하는 경단녀는 아니네’라는 생각을 했다.

동네 지하철역 앞에 붙어 있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토크 콘서트’ 포스터. [사진 제공 성동구청]

동네 지하철역 앞에 붙어 있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토크 콘서트’ 포스터. [사진 제공 성동구청]

동시에 취재로 만났던 김주미 씨(52세) 사례가 떠올랐다. 두 아이가 대학진학을 할 때까지 아이와 함께 이인삼각 경기를 하듯 전력을 다해 성적관리를 하며 지냈지만, 막상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후 자신의 쓸모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다시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30대보다는 40대, 50대의 여성이 더 공감하리라.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사회복지 단체의 돌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제야 자신의 생활에 다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는 김주미 씨.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을 만나고 싶었다.

‘즐거운 중년’이 되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활력을 만들어갈 활동을 해야 하는데, 취업이야말로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들어보기로 했다.

12월 13일 오후 2시 성동구청 3층 대강당은 2백여 명의 여성들로 꽉 차 있었다. ‘많이들 오셨네!’라고 생각하며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예상과 달리 30, 40대 여성들보다는 그 윗세대 여성들이 더 많이 참석한 것 같았다. 초청 강사인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장도 “생각보다 어머니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내용을 조금 다르게 진행해야겠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참석자들의 자녀 나이를 물어보았는데 고등학생 이하의 아이를 둔 여성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시행하고 있는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도 ‘혼인·임신·출산·육아와 가족구성원의 돌봄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하였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행사에 참여한 모든 여성이 경력 단절 지원 대상임엔 틀림없다.

“어머님들께 여쭤 볼게요. 지금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면 몇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할까요?”
기대 수명이 늘어난 상황과 고령화 사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할 모양이었다. 쉽지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설명방식이다. 2017년 기준 한국 남녀의 기대수명은 각각 79.7년, 85.7년이다. 굳이 이 데이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건강 관련 보험 계약 사항에서 보장 나이가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날이 아주 많이 남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25년엔 노인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자료제공=통계청]

2025년엔 노인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자료제공=통계청]

게다가 한국은 2017년부터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웃도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에는 그 세대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이런 맥락 안에서 객석에 앉은 여성들은 자신이 앞으로 자식과 손주들에게 얼마나 짐이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받은 셈이다.

“한 아이당 18명이에요. 그러니 자식과 손주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을 부양할 수 있어야 해요”
짐이 되지 말자. 이건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재취업을 독려하는 또 다른 방식임이 틀림없다. ‘사회적·경제적 필요 때문에 일을 찾는다’란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가혹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경력이 단절되었던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본격적으로 일해 본 적이 없는 이들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일이니만큼 가능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이를 위해 지역별로 위치한 여성인력개발센터와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이하 새일센터) 등 기관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팁도 전해주었다.

이어 30대와 40대 여성 3명이 무대에 올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를 발표했다.
요가강사자격증반에서 수학한 후 요가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오랜 기간 복무했던 교직을 딸의 건강 문제로 그만둔 후 다시 선생님의 자리를 찾게 된 여성, 여성인력개발센터의 골목길 강사모집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마을 여행 강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여성 등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력을 단절하게 된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었다.

오랜 기간 직업 없이 지내다가 다시 사회로 나와 일을 하니, 생활이 활기차지는 것은 물론 가족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경력단절여성 일자리 박람회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경력이 중지된 상태에서는 재취업을 하기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여성이 재취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8.4년이었다. [중앙포토]

경력단절여성 일자리 박람회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경력이 중지된 상태에서는 재취업을 하기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여성이 재취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8.4년이었다. [중앙포토]

사실 경력이 중지된 상태에서 재취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8.4년이었다.

경력단절 전후 본인이 받았던 임금의 격차는 월 26만8000원, 경력단절 없이 근무해온 여성과의 격차는 월 76만3000원에 달했다. 그러니 재취업을 결심했을 때에는 지금 왜 다시 일해야 하는지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찾아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 일하는 과정에서도 즐거움과 보람을 더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결혼한 이후 13년간 엄마와 아내로 지내다 골목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발표자는 “일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가면 되잖아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제 경우는 좋아하는 것 중에서 제가 잘하는 것을 찾았어요. 길에 일단 들어섰더니 곧 다른 길이 열리더라고요”라며 자리에 모인 여성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이 행사는 재취업의 구체적 방안을 전달한다기보다 왜 다시 일해야 하는지, 일하면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지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일하고 싶다면 마음을 다해 일을 찾아라. 그러다 보면 어떤 식이든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이것이 이 자리에 모인 30대부터 70대의 여성들이 공통으로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마침 여성가족부에서 2019년에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새일센터를 전국 15개소에서 30개소 이상으로 확대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새일여성 인턴 사업’도 지식서비스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등 특정 업종에 대해서는 1인기업으로 확장해, 취업을 원하는 여성의 직무적응을 위한 일자리 제공의 폭을 넓힌다는 계획도 있다.

내년에는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그래서 경력단절 여성의 비중이 다시 낮아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김현주 콘텐트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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