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균형 성장이 지역 감정 자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망국병」으로까지 불리는 지역 감정에 대한 연구가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사회학희(회장 김경동 서울대 교수)는 14, 15일 유성관광호텔에서 「한국 지역주의와 지역 갈등의 현상과 대책」을 주제로 40여명의 학자들이 참가한 학술 토론회를 갖고 지역 감정 해소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학술 토론회는 지난해의 심리학회에 이은 두번째 학회 차원의 논의로 지역 감정의 분석틀과 해소 방안을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이론적 분석이 가해지는 등 심화된 모습을 보여 관심을 모았다.
한국일보 후원으로 열린 이날 학술 토론회는 「지역 갈등의 역사적 배경」「지역 감정과 지역주의」 「지역 감정과 지역 격차」 「지역 갈등과 정치 과정」 등 4개 분과별 주제 발표와 토론을 거쳐 종합 토론에서 지역 갈등의 해소 방안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고 14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지역별·성별·직업별·학력별·소득 수준별로 전국에서 2천 여명을 선정, 각종 서베이와 여론 조사를 통해 작성된 이들 논문은 방법론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참석자들 대부분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논의는 지난 양대 선거를 통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는 지역 갈등의 효과적인 해소 방안을 위해 지역 갈등 문제의 인식 차원으로 심리적·구조적 접근 방법의 타당성 여부와 지역 갈등 및 지방 자치제·현행 정당 정치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문제로 제기하고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주제 발표와 토론을 거치면서 ▲지역 감정은 역사적 문제라기보다 60년대 이후의 불균형 성장이 산출한 것이며 ▲영호남간의 갈등이 지역 갈등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정치 엘리트 충원 과정의 편향이 경제·문화·심리적인 격차를 형성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토론은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역 개념에 인구학적 개념을 도임하고, 통계자료의 충실한 분석을 시도하는 등 그 동안 다소 정치 현상에 치우치고,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심리적 차원의 접근 방식에 머물렀던 단순한 분석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종합 토론에서 김익기 교수(동국대)는 지역 감정 해소 방안으로 여론 조사를 통해 응답자 중 50%이상의 지지를 얻은 ▲정치적 차원의 민주화, 광주 민주화 운동 해결, 정치 지도자들의 세대 교체 ▲사회적 차원의 인물 등용의 지역 안배, 지역간 교류 증대, 동서간 교통 시설 확충 ▲경제적 차원의 경제 격차 해소, 호남 지역에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이밖에 50%미만의 지지를 얻은 지방 자치제 실시·행정 구역 개편·현 정권의 교체·내각 책임제 실시 등도 소개했다.
또 참석자들은 분과별 토론을 통해 ▲사회의 개방화·민주제도 정착 ▲인사 정책의 공정성 ▲지역간 균형 발전 ▲정치인들의 득표 전략·정치 제도 개선 ▲언론의 무책임성 시정 ▲광주 민주화 운동 해결 ▲지역간 교류 증대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거리감의 실체 규명 ▲지역주의 실상의 정확한 이해 ▲권위주의 청산 ▲표준말 사용 ▲전국적 공동 문화 형성 등을 지역 갈등 해소 방안으로 제시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지역 갈등을 소극적으로 해석한 반면 한상진 교수(서울대)는 『지역 갈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평민당이 확고한 지지 기반을 토대로 정책 정당·이념 정당으로 변신, 탈 지역화를 모색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소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내각제의 기능적 측면을 신중히 검토할 것을 제의했다.
한편 안병만 교수(외대·정치학)는 『우리 정치사는 독정의 역사』라고 전제, 『지역 감정이 「결과적으로」 여소 야대 정국을 배태시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의 제도 개편 필요성론에 대해 김홍우 교수(서울대·정치학)는 프랑스 정치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우연성 개념에 입각, 『인간은 자기 행위의 역사적·객관적 의미를 알지 못하고 행동해야 하는 비극적 존재일 수 있다』며 『논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오히려 지역 감정의 악화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음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초청된 정치학자를 비롯, 타학계 인사들은 『이번 모임이 지역 감정 연구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임을 모았다.
단일 연구로는 최대의 연구원이 참가한 이번 작업은 사회학계 내의 민중 사회학 등 「다른 관점」들이 불참했고, 이 부문의 연구가 극히 최근에 시작된 것을 감안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지만 한동안 금기시되다 시피한 지역 갈등의 논의가 왜곡 해석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출발을 한 것은 크게 평가할 만한 일이었다.<유성=변영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