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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의 조력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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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남색 제복 차림의 장난감 매장 판매원이 장난감 자동차 위에 앉은 채 벽에 기대어 있습니다. 곳곳에 포장지가 널려 있는 난장판 속에서 팔다리를 인형처럼 죽 늘어뜨리고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신발은 벗어 던졌고, 무릎 위엔 장부를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았습니다. 장부가 불룩한 걸 보니 연말 대목을 잘 넘긴 모양입니다. 똑같이 넋 나간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인형들은 그녀의 처지를 연민하는 걸까요, 다 함께 ‘살아남았다’ 안도하는 걸까요. 오른쪽 위 곰인형이 의아한 듯, 걱정스러운 듯 아가씨를 쳐다봅니다.

노먼 록웰, 산타의 조력자, 1947년 12월 27일 미국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

노먼 록웰, 산타의 조력자, 1947년 12월 27일 미국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

미국 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1947년 12월 27일 표지 그림입니다. 제목은 ‘산타의 조력자’, 50년 가까이 이 주간지에서 일하며 4000점 이상의 그림을 남긴 삽화가 노먼 록웰(1894∼1978)의 작품입니다. 록웰은 크리스마스 시즌 표지화를 위해 한여름부터 장소와 모델을 고르고 포즈와 표정을 지휘했습니다. 백화점 장난감 매장의 협조를 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아 밖에 나가 인형을 잔뜩 사왔답니다. “53세 아이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인형이 많을 것”이라고 농담하면서요. 그러고도 딱 맞는 얼굴을 못 찾아 몇 주 더 헤맨 끝에 한 웨이트리스를 찾아냈다지요. 오래된 삽화에 남아 있는 아날로그적 낭만입니다. 인터넷·모바일 쇼핑의 시대에도 71년 전 주간지 표지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과정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있을 법한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게 아니라, 영화감독처럼 장소와 모델을 신중하게 고른 뒤 섬세하게 디렉팅한 ‘한 컷’,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영화감독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인디애나 존스’ 캐릭터에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태양의 제국’ 속 장면에서도 록웰의 영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감독은 록웰의 원화를 소장하기도 했습니다.

간밤에 선물들 잘 준비하셨나요. 얼마 전 열 살 아들이 “친구들이 산타는 엄마·아빠라는데 정말이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나는 산타를 믿는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죠. 아이를 위해 이 칼럼은 감춰둬야겠습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전 세계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은 장난감 가게 판매원과 부모 같은 ‘산타의 조력자’들 덕분일 겁니다.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