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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추억 ‘사회적 대타협’, 카풀·광주형일자리에선 성공할까?

중앙일보

입력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카카오 카풀 반대 택시 생존권 사수 3차 집회를 갖고 있다. 한국 사회는 카풀 문제 관련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수 있을까. [뉴스1]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카카오 카풀 반대 택시 생존권 사수 3차 집회를 갖고 있다. 한국 사회는 카풀 문제 관련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수 있을까. [뉴스1]

‘사회적 대타협’이 한국 사회의 과제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택시ㆍ카풀 갈등과 관련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에는 광주형 일자리 문제를 언급하며 “소득 3만 달러 시대에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타협이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서다. 사회적 대타협이 한국 사회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1989년이다. 민주화와 경기 호황으로 임금이 크게 오르자 노태우 정부는 노사정 대표로 구성된 국민임금위원회를 만들어 산업별 임금 인상률을 결정하자고 노동계에 제안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기업의 희생도 유도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못 믿겠다”며 거절했다. 정부 불신이 문제였다.

민주노총은 1998년 2월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추인을 받기 위해 서울 유림회관에서 임시대의원 대회를 열었으나 일부 강성 대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중앙포토]

민주노총은 1998년 2월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추인을 받기 위해 서울 유림회관에서 임시대의원 대회를 열었으나 일부 강성 대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중앙포토]

외환위기 직후 정부와 국민은 사회적 대타협을 다시 주목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경제 위기 극복을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켜 고통 분담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공무원을 감축하고, 경영계가 기업경영 투명화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자 노동계도 정리해고 법제화 등에 합의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듯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내부 강경파의 반발에 밀려 결국 합의를 파기했다. 게다가 경영계가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노사정위 약속을 지키지 않자 이듬해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탈퇴해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해 2015년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했다. 네덜란드가 노동 부문 대타협을 통해 유럽의 ‘강소국’으로 거듭난 계기였던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 모델이었다. 협의 결과 노사정 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하는 단계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노조 전임자 임금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던 중 정부가 이른바 ‘양대 지침’(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방법을 담은 정부 지침) 시행을 강행하자 이에 반발해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을 탈퇴하며 다시 대타협은 무산됐다.

노사정 문제 뿐 아니라 사패산·천성산 터널 공사 분쟁이나 방사능폐기물처리장 건설 등 각종 사회현안에서도 사회적 타협이 원만히 이뤄진 경우가 극히 드물다.

정부는 2016년 1월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관한 행정지침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서울광장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 지침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는 2016년 1월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관한 행정지침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서울광장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 지침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이 매번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문화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으로 분석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노조의 문화가 타협보다는 투쟁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보니 타협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점도 이유로 지목된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67%), 독일(62%) 등 사회적 합의주의 국가들은 정부 신뢰도가 높았지만 한국은 그 절반(36%) 정도였다.

정치적 측면과 관련해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 정치가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대표성이 떨어지다 보니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에 이르게 하는 기능이 떨어진다. 또 양당제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제 국가인 북유럽 국가들에선 다당제가 형성돼 있다.

2015년 5월 공무원연금 개혁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이 서로 격려해주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5월 공무원연금 개혁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이 서로 격려해주고 있다. [중앙포토]

그럼 문화ㆍ제도적 조건을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는 카풀, 광주형 일자리 문제 등에서 대타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 사회도 단 한 번의 ‘대타협의 추억’을 갖고 있다. 2015년 공무원 연금 개혁이 그것이다.

정부가 2014년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내놓자 공무원 단체는 극렬히 반대했다. 그러자 국회는 이듬해 여ㆍ야ㆍ정을 비롯해 전국공무원노조, 전문가, 시민단체를 망라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대타협기구’를 만들고 협상을 진행해 합의를 끌어냈다. 대타협기구의 야당 위원장이었던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사회적 조건’보다 ‘정치적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무원들이 직접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선택해볼 수 있게 했다. 당사자가 직접 정책을 선택해볼 수 있게 하는 건 협상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비전문가들이 정치적으로 협상해야 타협이 이뤄진다. 전문가들이 너무 개입하면 디테일에 빠져서 논의가 진행 안 된다. 타협은 정무적인 작업이지 전문가들의 숫자놀음이 아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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