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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엄마들 '학원 강박증' 버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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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일원동 한 서점에 모인 ‘엄마 교사’ 4명이 아이들을 위한 책을 고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하현덕, 이해림, 오정미, 이영화 주부. 최승식 기자

"아이가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요. 한 달만 다니면 100점 맞는 학원은 사고력이 아니라 푸는 기법을 가르쳐주는 거죠. 그냥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면서 키울래요."

사교육 없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초등생 엄마들이 모처럼 기를 폈다. 오정미(44).이영화(39).이해림(38).하현덕(37)씨. 사교육비가 월수입의 절반을 넘기도 한다는 요즘 세상에 자녀를 학원에 안 보내는 엄마들은 내심 불안했고, 그래서 더 외로웠다. 8일 저녁 서울 일원동 부근 한 찻집에서 만나자마자 '동지애'를 느낀 이들은 금세 친해져 '나만의 아이 교육법'을 공유했다. 이 자리엔 학원에 안 간 아이들이 모두 따라나왔다. 대화의 주제는 이내 엄마의 철학을 잘 따라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옮겨갔다.

#1. '자녀와의 교감' 이 우선

이들에게 사교육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아이와의 정서적인 교감이 먼저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면서 사교육을 시키고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란 생각이다.

아이가 뒤처지나 불안할 땐 학원서 레벨 테스트만

주변 영향 받기 싫어 한적한 곳으로 이사갔죠

아이에 자극 주고 싶을 땐 대학 캠퍼스로 나들이

선행학습 안하는 대신 경시대회 문제 풀게 해요

▶이해림=저는 학원강사를 했어요. 그래서 애들은 주말만 되면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외할아버지.외할머니랑 여행을 많이 다녔지요. 일상에 지쳤을 즈음 막상 내 자식을 직접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적성을 알려면 부모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었어요. 학원을 보내줄까 해도 아들 민이는 "엄마가 말씀해 주시는 게 생활속 얘기라 이해가 더 빨라요"라며 거절하던데요. 아이와 늘 한 시간씩은 신문을 읽고, 스크랩하며 정보를 챙겨요.

▶하현덕=예술고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당연하게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내 적성은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죠. 지금은 상담일을 하며 정말 행복합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 엄마.아빠의 아쉬움은 잠깐이지만, 아이가 겪는 고통은 평생일 수 있어요. 큰아이는 요즘 케이블 방송 '제이미 올리버'에 빠져서 요리사가 된대요. 엄마의 꿈도 같이 이루자고 외치면서 마루 탁자에 모여 앉아 '열공(열심히 공부)'해요.

#2. 불안 극복하기

그러나 언제까지 저녁시간에 엄마와 함께할 수 있을까. 고학년이 되어 갈수록 "이러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학원을 안 다닌 부작용이 생기는 건 아닌지" 등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이해림씨는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든다.

▶오정미=엄마들이 쓴 책을 보며 위안을 얻어요. 두세 살 더 많은 학부모들이 "학원은 별 소용이 없더라"하면 위안을 얻죠. 너무 불안할 때는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만 받고 돌아오기도 했어요. 반드시 오답노트를 활용해 방학때는 문제집을 혼자 복습하도록 해요.

▶이해림=특히 방학 같은 때는 본인이 생각하는 체크리스트 다섯 가지, 엄마가 생각하는 것 다섯 가지를 정해요. 그래야 균형이 생기거든요.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순간 자기가 체크리스트 항목을 더 만들고 있을 때는 놀라죠. 학년 선행학습은 안 시켜요. 대신 초급단계(포인트)에서 고급단계(경시 및 올림피아드)까지 한 패키지를 떼도록 하죠.

▶하현덕=학교가 못 미더워 학원을 많이 보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아 죽도 밥도 안 된다며 불평하는 부모가 있어요. 아이들이 정신이 산만해 학원을 보내봤자 소용없다고 하소연하죠. 부모가 중심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저의 경우 지적 자극이 떨어질까봐 '대학 나들이'도 해요. 애가 좋아하는 저자 강연회가 있는 대학을 찾아 사인을 받고 반드시 메일을 보내게 해요.

#3. 느리게 키우기

▶이영화=주변의 영향을 받기 싫어서 염곡동 산속으로 이사갔어요.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마음껏 누리며 살도록요. 개성을 강조하면 글로벌한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벌써부터 중.고교 족집게 학원 입시 준비를 시키면 아이는 국내용 시험에만 강해지죠. 아이가 동의하지 않은 계획은 계획이 아니에요. (학습)코칭은 결국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죠. 내가 먼저 아이와 고통을 함께하며 걸림돌이 뭔지, 계획을 포기한 이유는 뭔지 분석해 줘요.

▶오정미=설거지를 잠시 미루고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어머니가 계신데, 저는 손으로 퀼트 같은 것을 짜면서 조급증을 식혀요(웃음).

#4. 정보 공유는 이렇게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책값 15만원 정도와 주변 문화회관 수강료 5만원 정도가 한 달 교육비의 전부다. 무료 사이트의 이용은 아주 짭짤하다. 오래 이용하면 우수회원으로 추가 혜택도 많이 주어지는 게 이들 사이트의 장점이다. 이웃이라도 아이들 교육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진솔한 얘기를 엿볼 수 있는 커뮤니티도 만든다. 오정미씨는 "많은 엄마가 학원 스케줄 때문에 지레 포기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모를 뿐"이라고 귀띔했다.

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초등학생 자녀를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엄마들이 활용할 만한 교육관련 무료 사이트 리스트를 중앙일보 joins.com의 논술카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자료실에 올려 놓았습니다.

*** 하현덕.오정미 주부가 제안하는 '자녀 교육 이렇게 해요'

1.설거지는 잠시 미뤄 두어요.

식사 후 설거지를 하기 전에 아이들과 영어책을 읽습니다.

2.신문은 다양한 시사, 경제, 문화의 최고 논술교재예요..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오려서 살며시 책상에 올려 놓아요. 칼럼과 사설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발표력도 자란답니다.

3. 인터넷에서 나만의 즐겨찾기로 공부해요.

무료로 운영되는 양질의 학습 사이트들을 아이들 폴더로 따 로 관리합니다.

4.:마음속에 담아 두지 말아요.

e-메일도 이용하지만 가급적 직접 눌러 쓴 편지가 좋습니다.

5. 빨리빨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요.

아이가 문제를 틀렸을 때 바로 지적하거나 참견하지 않고 기 다려 줍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지요.

6. 무조건적인 지시는 하지 말아요.

항상 아이와 함께 호흡하며 역할모델이 돼 보세요. 잔소리 할 시간에 사소한 일도 먼저 실천해요.

7. 닭살 부부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요.

부부의 든든한 울타리가 아이들을 용감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요.

8.책이나 생활 속에서 만나는 멘토가 좋아요.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서점에 갑니다. 아이들은 살아 있는 혹 은 돌아가신 삶의 멘토들을 만나니까요.

9. 칭찬에도 기술이 있어요.

행동보다는 존재 그 자체를 칭찬해주는 편이 좋답니다.

10. 선생님을 신뢰하도록 참 훌륭하신 분임을 주지시켜요.

엄마가 선생님을 좋아하면 아이는 선생님을 저절로 공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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