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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사랑의 매'도 비교육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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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술 먹고 난동을 피우다 경찰관을 폭행하여 연행된 시민을 홧김에 구타한 경찰들을 사법처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권력에 도전한 범법자라도 사사로이 신체적 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군대마저 "어떤 종류의 폭력도 금지하며 이를 어길 때 형사처벌을 한다"는 획기적인 발표를 하였다. 신체의 벌을 법적으로, 관행적으로 허용하는 곳은 다 없어진 걸까. 아니다. 유일하게 신체적 구타가 남아 있는 곳이 교육을 행하는 '학교'다.

성적이 떨어져도 맞고, 지각을 해도 맞고, 친구와 싸워도 맞고, 실내화 신고 운동장을 밟아도 맞고, 머리핀 색깔이 튄다고 맞고, 급식을 남겼다고 맞고,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맞는다. 학교생활이 모두 맞을 일뿐이다. 맞기 위해 학교 다니고, 맞지 않기 위해 학교 다닌다.

그러나 이 모두가 맞을 짓인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 맞지 않고 배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이미 모두 맞아 죽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맞아도 되는가. 맞는 것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가.

우리나라는 초중등 교육법(제18조)과 그 시행령(제31조 7항)에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체벌 허용을 골자로 한 정책을 발표하였고 학교생활규정(안)을 마련, 체벌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제시했다. 그 결과 학칙에 체벌 허용조항을 둔 학교가 전국적으로 72%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1991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다. 그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96년, 2003년 두 차례에 걸친 권고에서 "모든 형태의 체벌을 명백히 금지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체벌의 근거인 초중등 교육법의 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체벌을 불가피한 교육적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단다.

과연 체벌은 교육의 한 방편일까. 체벌을 가함으로써 문제행동을 일시 멈추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공포, 교사에 대한 반발심과 치욕감은 결코 교육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교사의 체벌에 감사와 감동을 느끼는 학생이 없는데도 굳이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일부는 우리의 교육여건상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다수의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의 어려움 때문에 학생이 맞아줘야 한다는 말인가.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폭력적인 체벌에만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정식으로 '매'를 사용하거나 지나치지 않은 체벌은 피해가 심각하지 않으므로 허용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성적 체벌'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감정적 체벌'이 문제라는 인식이다.

아이들이 맞을 수도 있다는 인식엔 별 차이가 없다. 유엔의 고문방지위원회에서 "체벌은 일종의 고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듯이 폭력이 아닌 체벌도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릴 권리가 있고, 맞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는 교사와 학생, 어른과 아이의 인격적 만남도 교육도 이뤄질 수 없다.

교직은 전문직이고, 교육은 가장 전문성을 지닌 영역이다. 교육은 그 방식도 가장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교규칙을 어길 때,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을 때 때려서 듣게 할 양이면 교사의 지도나 교육의 전문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랑의 매'로 치장하여 인권을 짓밟는 일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체벌을 허용하는 전근대적인 미개한 법이 있다는 것은 수치다.

윤지희 참교육 전국학부모회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