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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 공장 새로 짓는 최태원, 반도체 재도약 장기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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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이 19일 반도체 공장 M16 기공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SK하이닉스]

최태원 SK 회장이 19일 반도체 공장 M16 기공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SK하이닉스]

SK 최고경영자인 최태원 회장이 19일 경기도 이천 'M16' 기공식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M16는 SK하이닉스가 2020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20조원을 투자해 경기도 이천에 새로 짓는 메모리반도체 설비 라인이다.

19일 경기도 이천서 열린 M16 기공식 참석 #"하이닉스는 좌절 속에 성장 스토리 쓴 기업" #반도체 시장 '다운턴' 조짐 뚜렷하지만 #장기적 승부로 제2 도약 이룰 뜻 내비쳐

'반도체 고점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에 이어 메모리분야 세계 2위(시장점유율 22.4%) 업체를 이끄는 수장이 내놓을 메시지에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는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좌절 속에서 희망을 지키며 성공을 이룬 성장 스토리를 써 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땀과 노력을 쏟아부어 새로운 성장 신화를 써 달라”고 말했다. 2000년대 현대전자 시절 극심한 불황 속 어려움을 이겨냈던 하이닉스를 격려하는 동시에 앞으로 반도체 투자를 직접 챙긴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날 기공식에는 최 회장뿐 아니라 최재원 수석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박성욱 수펙스 ICT위원장 등 SK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그러나 행사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로우 키(low key)’ 행보를 택한 이유로 시장 악화 신호가 곳곳에서 들려온 때문으로 분석한다.

'다운턴' 진입한 반도체 시장, 국내 업체 '초격차' 유지 총력  

반도체 시장에는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이 끝났다는 지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4Gb) 현물 거래 가격은 지난 7월 4달러에서 11월 기준 3.1달러로 22.5%나 급락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날 오전 발표된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실적 역시 시장에 나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마이크론의 지난 9~11월 실적은 79억10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80억2000만 달러)를 밑돌았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콘퍼런스 콜에서 "(가격 방어를 목적으로)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조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9만7700원까지 올랐던 SK하이닉스 주가는 19일 한때 6만원 선이 깨지기도 했다. 삼성전자 역시 4만원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2년 호황이 막 내리고 하강 국면(다운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가격 하락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뿐더러 신년 맞이 수요량 증가분 역시 제한적일 전망”이라며 “삼성전자 역시 내년 1분기까지 영업이익 감소세를 보이다가 2분기에나 반등 기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터 수요도 줄어들었다. 최근 반도체 시장은 클라우드 용 서버 D램으로 급격히 수요가 이동했지만, 정작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시장 예측 대비 진행이 더디다.

中, D램 가격 떨어지는데도 투자 공세   

'반도체 굴기'를 앞세운 중화권 업체의 도약도 한국 기업엔 악재다.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내년 한국 기업의 반도체 설비투자 전망치는 120억8700만 달러(약 13조6000억원)로 집계됐다. 투자를 크게 늘린 중국(119억5700만 달러)과 '투자 격차'가 사라졌다. 대만은 올해 대비 내년 투자액이 24.2% 늘어난 114억38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 회장 발언에서 볼 수 있듯 한국 반도체 업계도 일단 숨고르기 뒤 장기적 투자로 승부를 건다는 계획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신임 사장도 지난 11일 취임사에서 “당장의 추위에 대비하되 더욱 멀리 보고 준비하자”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정부가 경기도 용인 일대에 추진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반도체 완성품뿐 아니라 부품·장비업체까지 공동으로 입주하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것이 SK하이닉스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복안이다. <중앙일보 19일자 14면>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불황의 꼭짓점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훗날 미래 호황을 누릴 수 있다”며 “중국 기업이 메모리 시장에 치고 들어오면 한국 기업의 점유율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AI) 등 고성능 칩셋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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