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어민피해 극소화가 "열쇠" 농수축산물 수입자유화 조치와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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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9∼91년 3년간의 농수산물 수입자유화일정이 농어민의 반대와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사이에 산고를 거듭한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이 지난 85년 시장개방압력을 본격화한 이래 국내시장의 벽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농수산물도 부분적이나마 개방이 점차 확대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수산물은 그래도 두터운 수입규제장벽으로 보호를 받아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수입자유화조치는 그 폭과 내용이 크다는데서 국내농업이 본격적인 개방화시대를 맞게된 것을 뜻한다.
그만큼 농어민·농촌에 주는 충격과 타격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농수산물 시장이라 해서 국제화·개방화를 내내 외면할 수는 없고, 경제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큰 우리로서는 세계시장에 진출 폭이 넓어질수록 국내시장도 적정한 정도까지는 열어야한다는 것은 예고된 사실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무역규모 세계12위, 경상수지흑자 세계4위로 발돋움하면서 농수산물시장에 대한 개방압력은 미국·EC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개발도상국들로부터도 경제적 지위향상에 따른 세계시장에서의 역할 분담론을 들어 강하게 제기되어 왔었다.

<구매처 미국 많아>
물론 수입개방은 국내경제 차원에서 보면 농업구조조정을 촉진시켜 농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 시점에 대폭 농수산물 시장개방조치를 단행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이 오는 5월말의 불공정 무역국가선정을 앞두고 있어 우리로서는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을 보인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정부는 이번 예시화 일정에 미국이 수입개방을 요구해온 1백19개 품목 중 62개 품목을 포함시켰다. 특히 이중 밀은 단일품목으로는 수입규모가 가장 큰 것 (88년 수입액 5억4천2백만 달러) 이며 대두박·대두유도 미국이 단연 경쟁력이 강한 품목들이다. 결국 상당수 개방품목의 구매처가 미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만큼 이번 조치는 대미통상마찰완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수입 예시화 일정 제시로 미국의 통상압력이 완화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콩·쇠고기 등 제외>
정부는 이번 예시화 계획수립에 미국 측과 사전협의는 없었으나 발표 즉시 이를 미국 측에 통보하고 오는 15일 한승수 상공장관의 방미 길에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이해를 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방일정에는 미국 측이 큰 관심을 보여온 콩·옥수수 등 대량구매 농산물은 물론 쇠고기·오렌지 등 주요품목들이 제외돼 대폭적인 개방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부터의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우려는 줄지 않을 전망이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더라도 계속된 경상수지흑자로 오는 6월 GATT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국제수지위원회 (BOP)가 열리면 한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이유로 한 농수산물 수입제한 허용 대상국에서 졸업할 것은 분명해 전반적인 농수산물 시장개방문제를 둘러싼 논의와 압력은 계속 남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시장개방조치로 직접 피해를 본 측은 생산 농어민이라는 데서 정작 어려움은. 국내에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이번 농수산물 수입자유화에 따른 보완대책 비로 올해부터 93년까지 예산에서 5천61억 원을 확보, 피해농가를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 재배농가가 많은 콩·옥수수·양조용 포도·유채 등은 정부수매를 계속해 수입개방에 따른 국내가격 하락을 보상하고 복숭아·포도는 폐원할 경우 생산조정 보상을 하며 기타 대체작물 전환 등에 융자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완대책에도 불구하고 정작 농민들의 걱정은 현재 심는 작물을 포기할 경우 대체작물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측은 화훼·과실류·돼지 등을 경쟁력 있는 농산물로 꼽고 있지만 담배시장 개방으로 상당수 엽연초 재배농가가 고추재배로 몰린 결과 지난해 심한 고추파동을 겪은 데서 나타났듯이 국내농산물은 생산농가가 조금만 늘어나도 과잉생산, 가격폭락의 취약성을 드러내고있다.
결국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되고 그나마 전업의 기회가 주어져도 농촌인구 노령화현상으로 상당수 농어가는 전업능력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주지역 큰 타격>
이밖에 제주지역은 주요소득원인 유채·바나나가 모두 수입자유화 대상에 포함돼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받게될 전망이다.
모든 경제정책이 그렇듯이 개방에도 대가는 따르게 마련이다.
또 분명한 것은 농수산물 시장개방은 일본·EC 등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이번 3년간의자유화예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확대되리라고 봐야한다.
이에 대비해서 농어민들도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겠지만 정부로서도 농촌공업화에 의한 전업기회의 확대, 적응불능 농어가의 사회보장적 지원, 농업구조조정을 통한 농업의 생산성 증대 등 원활한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방자체는 이뤄질지 몰라도 농업은 국민경제에 계속적인 부담으로 남고, 농민에게는 가혹한 시련만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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