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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각해지는 울산사태 |공권력·운동권 대리전 양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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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권력개입이라는 극약처방을 받은 울산 현대중공업사태는 진압경찰에 맞선 재야단체·대학생·계열사 근로자들의 연대투쟁으로 번져「장외 폭력대결」의 대리전 양상이 심각한 국면이다. 당국은 지난달 30일 1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 사상최대규모의 노사분규 진압작전까지 폈으나 오히려 회사 밖으로 밀려난 파업근로자들과 경찰의 격렬한 가두공방전이 확산되는 등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전민련·민주교수협의회 등 재야단체와 전대협·현대그룹계열사 노조 등이 공권력개입을 규탄하고 파업근로자들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악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전으로 울산시 전체로서는 일부지역이지만 전하· 일산·남목동 일대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량통행이 막히고 최루가스와 화염병·돌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이 일대 상가는 영업을 제대로 못해 생계외협까지 받고 있다.
경찰은 사전영장이 발부된 이원건 씨 등 파업지도부검거작전을 강행하면서 4, 5일 울산지역사회선교협의회와 현대 해고자 협 등 재야단체를 수색하고 회원 20여명을 긴급 수배해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일 서태수 노조위원장이 사퇴를 선언한데 이어 6일 총회소집을 공고하고 24일 새 위원장선출 등의 새 노조집행부 출범 일정이 잡혀 실마리가 풀릴 여지는 생겼지만 파업지도부의 장외투쟁이 계속되는 한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 위원장 사퇴표명에 따라 노조 측은 4일 운영위원회를 소집, 이규홍 노조부위원장(39)을 위원장직무대리로 선출하고 정지수씨(30·계약관리부 대의원)를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7일 오전 10시 개최예정인 임시 대의원대회는 파업지도부가 불참할 경우 정족수부족으로 개회여부마저 불투명한데다「임원자격 및 「선거절차」 등 노조규약의 불합리성으로 인한 논란의 불씨를 남겨둔 상태여서 새 노조집행부가 탄생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정대로 대의원대회와 의원장선출로 새 노조집행부를 구성했더라도 공권력이 철수하지 않고 파업지도부의 장외투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치러진다면 시비의 소지는 계속 남게 된다.
현대중공업 사태는 지난해 6월부터 여섯 달 동안 진행된 1백36 개 항의 단체협약체결을 둘러싸고 빚어진 노사간의 갈등이 노노간의 갈등과 겹치면서 넉 달 째 파업이 계속되는 불행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당초 미 타결된 상여금 1백% 추가인상 등 4개항 이외에 파업기간 중 임금과·민·형사상의 책임문제 및 공권력개입 후유증까지 겹쳐 사태는 파업돌입 이전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파업지도부를 외부세력의 배후조종을 받는「불법」세력으로 규정,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공권력에만 사태의 해결을 기대해온 회사측의 책임이 큰 것으로 현지에서는 지적되고 있다.
경찰수뇌부는 일단 경찰력 증강을 통한 혼란 수습을 검토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최루탄발사를 최대한 억제해야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공권력이 사태해결의 만능열쇠는 아님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물론 경찰 내에서도 정주영 회장 등 현대그룹 수뇌부가 직접 울산에 내려와 노사간 화합조치를 하는 등 근본적인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현지 일각에서는 회사와 파업지도부가 협상창구를 열기 위해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원건 씨 등 9명의 영장집행을 비롯, 파업기간 중에 발생한 쌍방간의 시비를 일단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노동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 파업지도부까지는 아닐지라도 파업동조 근로자들은 노조집행부 재구성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조성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파업지도부는 과격시위를 중단하고 민주적인 새 집행부 구성절차에 참여하는 지혜발휘가 요청되고 있으며 회사측도 강경 노조에 대한 기피증세에서 탈피, 한 식구로 포용하며 대화를 풀어나가는 자세전환이 있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노사양측이 불신의 벽을 헐고 공동운명체라는 차원에서 화합의 노력을 기울이고, 당국은 이를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사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허상천· 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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