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의 일갈 “스즈키컵 끝났다. 이제부턴 아시안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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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VNA=연합뉴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VNA=연합뉴스]

“스즈키컵 우승은 지도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됐다. 우리는 오는 20일부터 곧장 아시안컵 준비를 시작한다. 우승의 기쁨을 누릴 시간이 없다.”

‘항서 매직’으로 베트남을 뒤흔든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스즈키컵 우승은 ‘어제 내린 비’였다. 우승 다음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 감독의 시선은 벌써부터 다음달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본선을 향해 있었다.

박 감독은 16일 베트남 하노이의 베트남축구협회(VFF) 건물에서 한국 취재진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당초 티타임 형식으로 가볍게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취재요청이 폭주하면서 정식 기자회견으로 형태가 달라졌다.

하루 전 우승 직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 감독은 옅은 미소와 함께 잠깐 추억에 잠겼다. “경기 중에는 그저 끝까지 잘 마무리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언급한 그는 “경기를 마치자 ‘해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진 발언의 초점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본선으로 바뀌었다. “나와 이영진 수석코치는 곧장 아시안컵 본선 준비를 시작한다.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 언급한 박 감독은 “우승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하루 전 말레이시아와 치른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1-0으로 이겼다. 앞서 치른 1차전 전적(2-2무)을 묶어 종합전적 3-2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지난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이룬 성과라 베트남 전역이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언제나처럼 박 감독은 우승의 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이 코치에 대한 칭찬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이영진 코치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함께 했다. 서로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면서 “최종 결정의 순간에 늘 이 코치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 내가 고민에 빠졌을 때 여러가지 시나리오에 대비한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년간 우리가 한 건 자신감이 부족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것 뿐”이라 덧붙였다.

박 감독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전술적 변신’을 준비 중이다. “아시안게임과 스즈키컵을 치르며 3-4-3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전술이 상당 부분 노출됐다고 느낀다”고 언급한 그는 “체격적인 경쟁력이 살짝 떨어지는 수비진의 경우 민첩하고 영리한 미드필드진이 도움을 줄 수 있다. 변화의 핵심은 선수들이 가장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스즈키컵에서 우승하며 동아시안컵 우승팀 한국과 내년 3월 A매치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에 대해 박 감독은 “전력상 우리가 한 수 아래인 건 분명하지 않나”면서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붙어보겠다”고 했다. 얼굴은 웃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영진 수석코치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나와 감독님의 목표 설정 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좀 더 공격적으로, 좀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준비한다면 감독님은 보수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진행하는 사람”이라 언급한 그는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결론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하노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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