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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ll li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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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한별 기자 중앙일보 Product 담당
김한별 콘텐트팀장

김한별 콘텐트팀장

얼마 전 본의 아니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을 울렸다. 평소 시간을 정해 놓고 TV를 보게 했는데, 어느 날 “약속 잘 지키고 있냐”고 묻자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그렇다”고 했다. 눈치가 이상해 다시 묻자 “거짓말을 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해도 금방 티가 난다. 부모의 믿음을 배신하는 데 대한 죄책감, ‘거짓말이 들통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잘 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짓말하는 건 정신적으로 꽤 힘든 일이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치로 찍어 보면 뇌의 세 영역이 함께 활성화된다고 한다. 오류를 감시하고, 행동을 조절하며, 감각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이다. 특히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 영역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 비해 높게 활성화된다고 한다(박솔, 『뇌과학으로 사회성 기르기』).

재미있는 건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편도체 영역의 활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아이보다 어른이 거짓말하는 걸 겁내지 않고, 그만큼 더 자주 더 심한 거짓말을 하기 쉽다는 얘기다. 하물며 전문 사기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렇다 해도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이 사기 등 전과 5범인 ‘가짜 권양숙 여사’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은 좀 미스터리다. 의학박사에 연륜 있는 현역(사건 당시) 시장이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았을까. 전화 12통, 문자메시지 268회를 주고받는 동안 아무런 의심이 안 들었을까.

25년 차 베테랑 검찰 수사관에 따르면 “학력이 낮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만 속임수에 걸려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김영현, 『속임수의 심리학』). 사기 피해자 중에는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꽤 많다는 거다. 그는 그런 미스터리를 푸는 키워드로 ‘욕망’ ‘신뢰’ ‘불안’을 꼽았다. 욕망에 눈멀고, 아는 사람이라고 안심하며, 불안한 마음에 의지할 곳을 찾다 보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이들을 노리는 사기꾼에게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 청와대는 언제나 핫 아이템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 사칭 사기 성공률이 92%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다음 김대중 정권 때는 전 정권 5년간 청와대 사칭 사기 사건이 총 64건에 금액으로 최소 1750억원이 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윤 전 시장은 어땠을까. 정치인에게 권력은 뿌리치기 힘든 욕망의 대상이다. 본인은 공천을 바라고 돈을 건넨 건 아니라는데,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자. 주말에는 아들을 재우고 장안의 화제라는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볼까 싶다. 엔딩 곡이 ‘We all lie(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던가.

김한별 콘텐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