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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수사’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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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팀 차장

문병주 사회팀 차장

칭찬과 박수를 받아야 한다. 소위 ‘국민 관심 수사’에 참여해 가정사 저버리고 밤낮으로 검사실을 지키며 고군분투한 검사라면 말이다.

이번은 다르다. 사람이 죽었다. 검찰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유언장을 남겼다. “인권침해 수사를 했다”고 딱 부러지게 비난할 수는 없지만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3일 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누가 봐도 수갑을 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이 장면은 그가 세상을 등진 후 “당시 모멸감을 느꼈다”는 지인의 말로 부각됐다. 불과 3일 뒤에 있었던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은 두 팔을 흔들며 영장심사장으로 향했다. 이전 김경수 경남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역시 손이 자유로웠다.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검찰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위법한 조치가 아니다”는 답을 내놓았다.

대검찰청 예규에 따르면 ‘영장 실질 심사를 받는 피의자 중 도주하거나 남을 위해(危害)할 우려가 상당한 경우’ 수갑을 채울 수 있다. 그 사람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할 대상으로 여겨졌을 당사자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사망 전 지인에게 “검찰 조사 때 윗선을 말하라는 요구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유품에서는 사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봐야 자초지종을 아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식의 하소연도 나왔다. 제대로 된 팩트 확인 없는 자백을 종용당했다는 의미다.

이런 자백을 받기 위해 한때 전화번호부를 말아서 머리를 때리는 등의 전근대적 폭력도 사용됐다. 논란이 된 밤샘 조사도 그중 하나다. 극도로 심신이 지쳐 ‘무너지는 순간’을 노리는 방법이다. 최근에는 후배 검사의 조사가 끝나면 고참 검사들이 들어와 ‘한 수’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모른다”는 이들에게 “다 알고 있으니 협조하라. 무슨 일을 당하실지 모른다”며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형식이다. 선배 검사들이 ‘노하우’라고 말 안 해도 이를 보고 성장하는 젊은 검사들의 뇌리에는 배워야 할 방법으로 각인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생길 때마다 검찰은 개선책을 내놓으며 수사관행 개선과 ‘인권’을 강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또다시 인권에 방점을 둔 수사를 지시했다.

하루 이틀 사이에 확 바뀌리라 기대하진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거는 건 이런 지시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검사 한 명 한 명이 정의 실현이란 가치를 가슴에 안고 오늘도 검찰청으로 출근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무리 수사가 맘대로 되지 않더라도, 아무리 위에서 능력 없다 다그치더라도 ‘인권 수사’를 주장할 줏대 있는 검사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병주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