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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문 정부 실정 막기위해 뭉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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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유한국당이 선택한 새 원내사령탑은 나경원 의원(4선·서울 동작을)이었다. 한국당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다.

한국당 첫 여성 원내대표 당선 #“이제 지긋지긋한 계파는 없다” #한국당 첫 여성 원내대표 당선 #30대 판사 출신으로 일찍 유명세 #무계파 표 다지고 친박 지지 받아 #큰 선거 약하다는 이미지 벗어

11일 열린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정용기 의원을 러닝메이트(정책위의장)로 내세운 나 의원은 68표를 얻어 35표에 그친 김학용(3선·경기 안성) 의원을 33표 차이로 제쳤다. 이날 투표에는 112명 한국당 의원 중 당원권이 정지된 9명을 제외한 103명이 참여했다.

당선 뒤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의원들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한국당은 지긋지긋한 계파 이야기가 없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막아내고 우리가 지켜야 될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치자”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선거를 통해 보수통합의 가능성이 더 커졌다”며 바른미래당과의 연대강화를 시사했다.

나경원 의원(가운데)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나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이 확정된 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왼쪽), 김성태 원내대표와 함께 손을 들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4선 의원으로 한국당 첫 여성 원내대표다. [김경록 기자]

나경원 의원(가운데)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나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이 확정된 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왼쪽), 김성태 원내대표와 함께 손을 들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4선 의원으로 한국당 첫 여성 원내대표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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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내대표는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특보로 영입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30대의 젊은 나이와 여성 판사 출신이라는 커리어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전국구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17대 때 비례대표로 첫 금배지를 단 이후 서울에서 내리 3선을 하면서 대중적 기반을 갖춘 당내 중진으로 성장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 도전해 낙선했고, 2016년 두 차례 도전한 원내대표에서도 연이어 낙선했지만 이번에 원내대표가 되면서 ‘큰 선거’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벗게 됐다.

특히 당초 이번 경선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지만 나 원내대표가 큰 표차로 승리를 하면서 당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 의원의 예상 밖 완승은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으로 풀이된다.

나경원 33표차 예상밖 완승 … 보수 진영 통합이 과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왼쪽 둘째)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경쟁자였던 김학용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정용기 신임 정책위의장.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왼쪽 둘째)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경쟁자였던 김학용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정용기 신임 정책위의장. [김경록 기자]

①제2의 내전 우려=나 의원의 압승은 중립지대 의원들의 전략적 선택이 영향을 끼쳤다. ‘친박계 vs 복당파’의 내전 양상이 다시 불거지는 데 대한 경계감 때문이다. 한 초선 의원은 “이제 당이 25%대 지지율을 회복하며 간신히 탄핵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는 참인데, 김학용 의원이 당선돼 다시 ‘친박계’니 ‘복당파’니 하면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내전 양상이 재연될 것 같아 나 의원을 찍었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친박계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사실상 ‘무계파’에 가깝다. 그래서 나 의원의 당선으로 당내 친박-비박의 계파구도는 오히려 옅어지게 됐다. 나 의원은 2일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친박과 비박은 금기어로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데 이어 이날 당선 소감에서도 “이제 한국당은 지긋지긋한 계파 이야기가 없어졌다. 하나로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②복당파 견제 심리=김학용 의원은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 함께 지난해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유턴한 복당파다. 당내에선 당내 분란의 책임이 있는 복당파가 연이어 원내 사령탑을 맡는 것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 TK(대구·경북)의 한 의원은 “당의 내분과 관련해 친박계도 잘한 것이 없지만, 복당파도 자숙해야 한다”며 “복당파가 연달아 원내대표를 맡는 것에 대해 ‘이건 좀 곤란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에 대한 견제 심리도 드러났다. 지난달 14일 한국당 초·재선 의원들로 구성된 ‘통합과 전진’ 모임은 “보수 분열, 우파 분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김무성 의원은 자숙하길 바란다”고 공개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김무성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학용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자연스럽게 김무성 의원의 막후정치가 재개될 것이라는 우려가 오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번 경선 결과로 패배 당사자인 김학용 의원보다 차기 전당대회 불출마 카드까지 꺼내 들며 원내대표 선거를 챙긴 김무성 의원이 입은 상처가 더 크다는 말까지 나온다.

임기를 마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1일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기를 마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1일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4·4·2 전법’ 쓴 나경원=나 원내대표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뛴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전 4명, 오후 4명, 저녁 이후 2명의 의원을 따로 접촉해 지지를 호소하는 이른바 ‘4·4·2’ 전술을 구사하며 표심에 호소했다. 여성 의원들 사이에선 “과거보다 낮은 자세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주변을 챙긴다”는 말이 돌았다. 한 여성 의원은 “나 의원이 ‘제가 고쳐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몇 차례 부탁했다”고 전했다.

나 원내대표의 대승을 ‘셀레브리티 효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당 관계자는 “당 지지율이 여전히 여당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대중인지도가 낮은 김학용 의원보다는 나경원 의원을 내세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정용기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끌어안은 것에 대해 한때 ‘오판’이라는 분석도 나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친박계 끌어안기도 효험을 본 셈이 됐다.

친박계가 지지한 나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비박계가 중심이 된 조강특위의 인적쇄신 작업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비대위의 인적쇄신에 강한 불만을 제기해 온 친박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비대위가 인적쇄신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하고 있다. 나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여야 관계의 원칙에 대해 “과감히 협상해 도울 것은 도와주지만 절대 안 되는 것, 당이 반대하는 것은 분명히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한국당이 ‘유치원 3법’과 김상환 대법관 청문 동의안 등 시급한 현안 처리에 나서는 것이 건전한 국정 동반자로서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바른미래당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친박·잔류파의 지지를 받는 나 의원이 당선돼 바른정당 출신 의원이 복당할 명분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성운·안효성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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