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도 민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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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문익환 목사의 평양방문은 이래저래 충격적이고 끊임없는 화제를 낳을 전망이다.
이 사태에 대한 의견은 일단 유보하고 이 사태를 계기로 북한의 대남 전략이 우리 사회에 고도로 먹혀들고 있는 현실에 눈을 돌려보고 싶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통일이 안 되는 근본이유를 우리 쪽의「소극적 자세」로 인식하고 그 출발선에서 통일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집권 측의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민중이 나서 북쪽 민중과 직접 부딪쳐 통일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논리다. 민중이 주체가 되는 통일이라면 어떤 형태의 통일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인식도 일부에선 제기 되고 있는 것 같다.
일리가 없지도 않고 궁극적으로는 그 바탕에서 통일이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쪽 민중은 물론 그 대표성을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도 각 부문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북쪽은 어떠냐는데 있다. 이 말은 민중통일론의 출발점에서 제기된 제도권과 비 제도권의 대립개념에서 본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북쪽은 어떤가. 조선노동당이 북쪽 민중의 대표성을 가진 기구로 인정된다면 문제는 단순화된다.
노동당이 최고결정권을 가진 사회에서 각부문의 대표들은 한목소리로「민중의 소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우리 쪽의 재야인사들이 우리측 집권세력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북쪽상대자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저쪽 관변 사람들을 한사코 만나겠다는 걸 보면 노동당을 민중 대표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0년간 북한의 대남 전략기조가 바로 이 같은 남쪽의 자체 내 조직 및 역량이 자생적으로 생성·확대되도록 하는데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의 대남 전략이 적중하고 있는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님은 최근 우리사회에서 제기되는 주장을 보면 단박 알 수 있다.
민중통일론의 기수로 자임하는 문익환 목사는 27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일성 주석을 만나 민중통일방안을 논의했다.
민중통일론 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런 일일지 모른다. '
그러나 우리 쪽 당국은·타도되어야 될 대상이고 저쪽 기관은 민중대변기관이라는 가설을 신봉한다면 민중통일론 자들은 보다 스스로를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주장을 펴야 할게 아닌가.
그 주장이 뭘까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지만 말이다. 이수근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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