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교류엔 상대가 있다|북한의 기본구조 파악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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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익환목사의 돌연한 방북을 계기로 우리의 통일 논의가 혼돈에 빠진 듯 하다. 교류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는데는 큰 이의가 없으나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온당하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제가 됐다.
교류를 한다면 상대가 있는 것이고, 그 교류의 확대가 통일에 접근하는 교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교류정책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 점은 우리의 교류정책을 정비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문목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대남 교류정책을 짚어볼 몇 가지 자료가 제시되었음을 우리는 주목한다.
우선 북한의 24개 정당사회 단체대회가 27일 채택한 5개항의「연합성명」이 그것이다. 이 성명은 『남북대화를 당국간에도 하고 민간급에서도 진행한다는 것이다. 또 김성은 이날 문익환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나라의 긴강상태를 완화하기 외해서는 정치·군사회담과 함께 남북사이의 교류도 병행해야 한다』고 해 다기적 대화 방식을 거듭 천명했다. 통일이라는 하나의 의제를 놓고 쌍방의 정부와 민간이 다원적으로 접촉하자는 주장이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논리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이다. 그것은 북한정권만이 정통성을 가진 정부이고, 한국정부는 남한의 일부세력이 구성한「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남북간의 정상회담을 제의해 왔으나 북한은 한국의 대통령을 사회단체 대표와 동렬로 함께 만나자고 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명백하다. 남북간의 정치 관계회의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기본전략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회 각 분야의 대화와 교류를 상정할 때 남북 쌍방의 구조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도 우리는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온 사회가 김일성의 말 하나에 따라 움직이는 일사불난 한 유일 체제다. 거기엔 기능분담이 없으며 모두 관제화 돼 있어 사실상 민간부문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은 각계 각층이 독자적기능을 발휘하는 다원적 개방체제다. 이런 상황에서 성실하고 진정한 각 분야의 다원적 대화가 가능할지 깊이 연구해야 하며 일 방의 다양한 통일논의 혼란만을 겨냥한 것은 아닐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당사회단체 연합회의」 성명이 『통일문제 협의를 위한 민간급의 자율적인 대화제의를 격려하며 남조선과 해외의 노동자·농민·청년학생·지식인·여성·종교인·자본가 및 단체들과의 대화를 적극 추진한다』고 한데서도 그 진의를 엿 볼 수있다.
평양이 주장하는 남북간의 다원적 통일대화가 가능하려면 북한사회도 유일체제가 아닌 다원사회여야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도 문익환목사와 같은 사람의「다른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최근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유화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고 전술의 변화일 뿐이지 대남 전략과 목표의 기본구조는 조금도 변치 않고 있다.
남북대화와 교류의 폭은 넓혀가야 한다. 그러나 그 상대의 기본구조와 기본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교류의 노력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합리적인 원칙과 효율적인 전략을 명백히 확립하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우리 사회의 다원성의 강점을 살리면서 기능주의적 접근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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