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V 『베스트셀러극장』「신 용비어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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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6일 밤 방송된 M-TV『베스트셀러 극장』「신 용비어천가」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 작품은 80년 신 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비롯된 전반적인 위기상황 하에서 언론이 취한 형태를 극화시켜 보여주었다.
한족에서는 검열거부와 관련해 수배·구속 등 탄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신 군부의 지도자를 민족 지도자로 미화시키는 특집을 제작했다. 이는 권력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 언론이 보내는 화답에 속하며 80년 당시의 언론이 한결같이 겪어야했던 운명이었음이 암시됐다. 그러나 이 같은 일들이 계엄하의 특수상황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치열한 고뇌와 반성의 과정 없이 이루어 졌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은 한껏 증폭됐다.
따라서 이 작품의 가장 큰 의의는 6공 출범이후 대부분의 언론이 80년의 상황을 언론의 일방적인 수난사로 기록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언론이 권력과 적극적으로 손잡고 그 결과 부도덕한 집권세력의 기반이 확립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론 스스로가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또 5백년전 이성계의 쿠데타로 집권한 조선왕조가「대내적으로는 신 옥조 출범의 필연성을 알리고 대외적으로는 이의 당위성을 홍보하려는」발상에서 문관을 동원,「용비어천가」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 주었다.
한편 5백년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는 순환을 빗대,「무관과 문관 그 영원불멸의 조화」라고 꼬집기도 했다.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진실보다는 신화가 필요하다」는 언론스스로의 자가 당착적 논리는 역사의 엄숙한 진행을 왜곡시키고 말았다는 교훈을 되씹게 했다.
그리하여 권-언 유착의 구체적 산물인「특집」은 지난날의 역사를「혼돈과 갈등」「낡은 정치」로 몰아세우고 「안정과 화합」을 강조하고 「번영이냐 좌절이냐」라는 단순 2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세력을 정당화 시켜주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마침내 집권기반을 확립한 극중의 이정환 중장은 자신의 선배였던 지난 시절의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양국간의 전통적 우호관계와 확고한 지지를 확인하기 위해』미국 방문 길에 오른다. 이리하여 이전보다 훨씬 예속적이고 사대주의적인 정권이 출발하고 또 다른「용비어천가」는 장엄한 완결에 이른다. <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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