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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도 고압 물 폭탄 4m 치솟아 … 백석역은 지옥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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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5일 오전 11시 백석역 3번 출구 앞은 진흙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현장은 전날 일어난 온수관 파열 사고 수습이 한창이었다. 굴삭기가 뚫려 있는 도로의 구멍을 막고 있었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수구도 있었다. 인근 상가에서는 흙탕물을 씻어내기 바빴다.

딸·예비사위 만나고 오던 60대 #차 앞창 뚫은 끓는 물에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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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4일 오후 8시4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지하철 3호선 백석역 인근 도로 일대는 아비규환을 이뤘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가 관리하는 850㎜ 열 수송관(온수 배관)이 터지는 사고로 섭씨 100~110도의 뜨거운 고압의 물이 ‘물 폭탄’처럼 도로로 뿜어져 올라왔다. 뜨거운 물줄기가 2.5m 높이의 지반을 뚫고 4m가량 높이로 치솟았다. 주민들은 “밤 시간 흰색 연기가 마구 치솟아 처음엔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5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 사고로 손모(69)씨가 차 안에서 전신화상을 입고 숨졌다. 사고 지점을 지나던 손씨의 차량은 순식간에 덮친 물 폭탄과 토사에 고립됐다. 이어 앞 유리창을 뚫고 차 안으로 밀려 든 끓는 물에 전신에 화상을 입은 손씨는 뒷좌석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숨졌다. 손씨는 이날 결혼을 앞둔 딸, 예비사위와 근처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손씨에 대한 부검을 하는 등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 밖에 중상자 1명을 포함해 33명이 화상 피해를 입었다. 5일 낮 현재 손모(39)씨 등 4명이 입원 치료 중이고 29명은 치료 후 귀가했다.

목격자들은 현장이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현장 인근에 있던 이모(31)씨는 “연기가 자욱해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잇따라 응급차에 실려갔다”고 말했다. 백석역 인근에서 요가 수업을 듣던 최모(29)씨는 “화재 대피 경보를 듣고 건물 옥상으로 뛰어갔는데 옥상 문은 잠겨있고 연기가 건물 내로 올라와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아버지와 함께 떡볶이 가게를 하는 박모(38) 씨는 “둔탁한 ‘펑’ 소리와 함께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뭐지 하는 순간 수증기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지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사고로 일산동구 백석동과 마두동 3개 아파트 단지 2861가구에 난방과 온수가 중단돼 주민들은 강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는 복구작업을 끝내고 5일 오전 7시55분 난방과 온수 공급을 재개했다.

이날 사고는 낡은 배관에 균열이 생긴 뒤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면서 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가 난 수송관은 1991년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 관계자는 “수송관이 낡아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세한 내용은 보수 부위를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양=전익진·이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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