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 "끝냈다" 자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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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 시민들이 8일 알카에다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뒤 이라크 군인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바그다드 AFP=연합뉴스]

이라크 저항세력의 핵심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사망한 것은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체포 이후 미국이 거둔 가장 큰 군사적.정치적 승리로 볼 수 있다. 최근 수립된 새 이라크 정부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호재다.

저항 테러의 구심점이던 알자르카위가 제거됨에 따라 저항세력이 위축되고 이라크가 안정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저항이 급속히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전후 미군 점령기간에 불만을 품은 '제2, 제3의 알자르카위'가 지난 3년간의 저항 과정에서 양성됐기 때문이다.

◆ 자신감 얻은 주권정부=알자르카위의 사살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누리 알말리키 주권정부 총리는 "끝을 냈다(terminated)"라는 표현을 썼다. 알말리키 총리는 "또 다른 알자르카위가 생기면 언제라도 사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다.

저항세력 소탕, 치안 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취임한 알말리키 총리는 한 달 만에 미군의 도움으로 중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는 알자르카위 사살을 최근 폭력사태를 반전할 계기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바그다드에서만 6000여 명이 사망했고, 주권정부가 출범한 5월 한 달 동안만 14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폭력의 배후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라크를 구성하고 있는 종파.종족 간 갈등이 증폭돼 주권정부는 존속마저 위협받게 된다. 이미 시아.수니.쿠르드 지역으로 이라크를 삼등분하는 시나리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 일단 분위기는 조성=알자르카위 사망을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라크 의회는 내무장관과 치안장관을 시아파에, 국방장관을 수니파에 나눠주는 안을 인준했다. 종파.정파 간 갈등으로 합의를 보지 못해 지난달 주권정부 출범 시 공석으로 남았던 요직들이다. 군.경찰.보안기관을 각각 지휘하는 각료를 신속히 임명함으로써 알자르카위 사망으로 초래된 저항세력 지도부의 공백을 최대한 활용해 치안을 확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알자르카위의 사망은 이라크 정부의 향후 정국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시아파 정권 등장에 반발하는 수니파 저항세력은 물론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수니파 정파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는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연방제 헌법 개정 등 시아-수니파 간 갈등 요인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시아파가 주도권을 더 확실히 쥘 전망이다.

이라크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는 더욱 힘을 잃게 됐다.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기득권층인 수니파는 미군 점령 이후 소수파로 밀려나면서 투쟁에 앞장서 왔다.

◆ 끝은 아니다=이라크의 안정 달성은 아직 요원하다. 현재 전 세계 테러 조직이 그렇듯 이라크 내 저항세력도 세포조직으로 움직인다. 알카에다의 사상은 이미 이념화됐다. 큰 이념하에서 작은 조직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형세다. 인터넷.무선전화 등 현대 통신수단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지시 내용을 전달하면서 자체 행동에 나서고 있어 추적이나 소탕이 어렵다.

게다가 최근 이라크 내 폭력 상황은 미군에 대한 공격보다는 정권을 잡은 시아파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수니파 간의 충돌이 가장 큰 원인이다. 상대 종파의 모스크 공격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올해 들어서만 120여 개의 양측 모스크가 공격받는 등 종파 간 분쟁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이 때문에 알자르카위의 사망이 현재 이라크의 '준내전 상황'을 종식시킬지는 미지수다. 50%가 넘는 실질 실업률, 지지부진한 재건사업, 미군의 비인권적 행동, 시아파 정권의 수니파 박해 등이 이라크 폭력 사태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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