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포장된 이붕 수상 발언|박병석 <홍콩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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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리펑」(이붕)수상이 마치 북한의 통일정책지지를 유보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처럼 국내에 전해져 중국의 창구로 자부해온 홍콩주재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정책이 합리적이 아니면 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이붕이 직접 말한 것처럼 보도됐으나 그의 「정부사업보고」중 한마디도 그런 구절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이 국내에서 대서특필된 문제의 발단은 일본 매일신문 북경특파원의 이붕 발언 해석을 그대로 그의 연설내용처럼 인용 보도한 국내통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본 매일특파원은 이붕이 『북한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합리적 주장을 지지한다』고 한데 대해서 단순한 형식논리를 빌려 『이는 합리적이 아니면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기자 개인의 해석을 덧붙였던 것뿐이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정책과 관련, 중국이 북한의 「합리적 주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똑같이 되풀이해온 일관된 입장이다.
지난해 4월 개최된 같은 성격의 전인대에서도 이붕의 「정부사업보고」에 중국은 북한의「합리주장」을 지지한다는, 이번과 똑같은 구절이 들어 있었고 기회있을때마다 외교부대변인의 입을 통해 천명돼왔던 것이다.
이붕의 연설원문을 읽은 홍콩의 관계전문가들도 이번 연설내용이나 최근 중국의 움직임으로 볼 때 중국의 대한반도 통일정책에 아무런 변화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매일신문기자의 형식 논리적 해석과 국내통신의 잘못된 인용때문에 중국이 대북한정책에서 대전환을 한 것처럼 왜곡된 것이라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제3자의 시각으로 굴절된 내용을 또 한차례 잘못 굴절해 국내에 전달된 사례를 보며 언론이 「자기의 눈」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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